“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루가 5:31~32)
송구하게도,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은 소위 “멀쩡하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어디에 내놔도 당당하며, 부끄러움이 없다. 나는 완벽하며 이 모습 그대로로 충분하다”라고 생각하는 분에게는 예수님의 복음이 무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전한 복음은 내면의 아픔을 간직한 사람, 스스로의 부족함을 잘 아는 사람, ‘죄’라고 부를 만큼 자신이 가진 흠을 겸허히 인정하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의 공동체입니다. 자신의 죄를 자복하며 가슴을 치는 사람들만이 교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구약성서가 전하는 희년, 예수님이 전하신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는 곳은 우아하고, 의로움이 넘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남에게 말 못 할 아픔, 부족함, 부끄러움을 가진 이들만이 복음을 제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완벽하지 않음을, 내 멀쩡해 보이는 삶 뒤편에 누구와도 나누지 못할 그림자가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참된 복음과 만날 수 있습니다.
희년은 죄를 시인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자복하는 우리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루가는 희년이라는 밭을 우직하게 일구어가듯 예수님의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우리가 이 대답을 내뱉기를,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전했던 이 답변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루가 5:8)
나를 떠나 달라는 이 고백, 부족함과 부끄러움으로 인해 자신은 완전할 수 없다는, 주님을 따를 수 없다는 이 겸손한 고백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 죄를 시인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듭나면 그 사람은 성서 말마따나 “새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변화에서 시작한 희년이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세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사람과 직업을 대하는 태도, 본성과 욕심에 따라 살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 노력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 교회입니다. 아니 교회여야 합니다. 완성될 수는 없으나 노력하는 그 모습에서, 끝까지 하느님의 뜻을 찾아 헤매려는 마음가짐으로 사는 공동체를 통해 하느님은 세상을 바꾸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