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느님
삼위일체와 관련한 가장 아름다운 성화로 많은 이가 꼽는 작품이 15세기 러시아 정교회의 위대한 성상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그린 ‘삼위일체’입니다. 화가는 성삼위의 모습을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이야기(창세 18:1-15 참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창세기의 이 장면은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나타난 세 사람을 지극히 환대하는 모습, 그리고 주님께서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가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삼위일체’ 성화에는 정작 아브라함의 모습은 없습니다. 천사의 형상을 하고 있는 세 사람이 식탁 위의 그릇에 담긴 음식을 중심으로 살짝 몸을 기울인 채 서로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식탁은 제대를, 그릇은 성작을 닮았습니다. 온화한 분위기와 세련된 색채의 이 그림을 보는 이는 자연스럽게 세 사람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잠길 것입니다.
이 그림을 감상한 영성가 헨리 나우웬 신부는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도 세 거룩한 천사가 나누고 있는 친밀한 대화에 동참하라고, 그리고 식탁에 더불어 앉으라고 부드럽게 초대하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성자한테로 몸을 기울이신 성부의 움직임과 성부한테로 몸을 기울이신 성자와 성령 두 분의 움직임은 하나의 움직임을 이루게 되고, 기도하는 사람은 그 안에서 마음이 드높여지고 든든해진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성화에서 신적 신비의 매우 중요한 요소를 깨닫습니다. 바로 초대와 환대를 통한 ‘상호 내주’(相互內住)입니다. 내가 그 안에 있도록, 그가 내 안에 있도록 하는 사랑이 삼위일체의 사랑이며, 우리는 그러한 사랑에 초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아마도 인간이 이해하고 설명하는 진리이기 이전에 그 안에 머물러 살고 숨 쉬는 진리이구나.’ 하고 깨달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성삼위께서 초대하시는 그 사랑의 집에 머무르는 은총을 거듭 청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