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간에도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러 많은 선교사들이 세계 곳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방법에서는 차이와 다름이 있겠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전하려는 마음은 같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은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을 위해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인간들에게 모욕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결국 사랑의 승리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이 단순하면서, 확실한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선교와 전도를 하며 생기는 방법의 차이는 사랑이 중심이 되는 힘 가운데 성령의 이끄심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결국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오늘 복음성서에서는 예수님이 일흔 두 제자를 파견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인 것이지요. 세상은 교만, 질투, 두려움, 죄책감으로 인해 닫힘으로 인한 폭력과 갈등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 사랑이 존재함을 선포함으로서 평화가 열리는 복음을 전하려고 많은 제자를 세계 곳곳에 보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런 긴박하고 진정한 마음은 제자들에게 돈주머니도, 식량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고, 인사 하느라 가는 길도 멈추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제자들을 보며 어린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구나 하십니다.
사랑의 평화를 전하는 제자들이 왜 어린양이 되어서 어린양을 죽이려는 이리떼 가운데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 말씀처럼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면 평화가 머무를 것이지만 평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면 평화가 머무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평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만을 알려주고 묻은 발의 먼지를 털어놓고 가라고 합니다.
요즘 우리들은 진정 평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인 거 같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믿으려고 하지도 않은 거 같습니다. 진정 그것을 바라고 구하려는 삶의 모습이 아니라 여전히 교만, 질투, 두려움으로 인한 닫힌 힘을 의지하고 삶으로서 살아가는 거 같습니다. 진정 평화를 바란다면, 사랑을 바란다면 닫힌 이 세상에서 거듭나려는 몸부림 존재할 것이고, 그런 몸부림속에 주님의 복음은 정말 귀하고 귀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