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이 목적을 가지거나 의도가 있는데 그것에 누군가 호응을 해줄 때 기뻐합니다. 필자 친구 중 이런 성향이 심한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자기가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꼭 사고 맙니다. 그런데 물건을 살 때 꼭 친구들에게 묻습니다. 저에게도 자주 묻곤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불필요하거나 너무 비싼 물건이다 싶어서 사지 말라고 조언을 하면 그 친구는 제가 그 물건에 대해서 잘 모른다거나 상황에 대해서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그 물건을 사도 좋겠다는 친구가 나올 때까지 전화를 하고 결국 그 물건을 삽니다. 그 친구에게 불필요한 물건이라고 아무리 좋게, 돌려서, 합리적이게 말해도 듣지를 않습니다.
오늘 복음성서에서 유다인들은 예수님에게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 주시오’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이미 말했는데 너희는 내 말을 믿지 않는 구나’(요한 10장24-25절)하고 말씀하십니다. 왜 유다인 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지 자꾸 묻는 것일까요? 만약 예수님이 무시할 만한 존재였다면 무시해버리면 되는데 왜 무시하지 않고 떠나지도 않고 자꾸 되묻는 것일까요?
그들에게도 예수님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던 거 같습니다. 예수님의 인간을 넘어선 권능을 본 것이죠. 그런데 그들은 왜 믿지 않고 자꾸 묻기만 할까요? 그것은 아마 그들에 목적에 맞지 않는, 그들의 욕망, 욕심에 맞지 않는, 그들이 원하는 것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일 아닐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것이 아닌 하느님을 것을 택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실천해서 보여 주십니다. 자신의 것을 버리고, 남에게 버림받는 사랑의 희생을 강요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것을 가지고 남에게 우월하려는 유대인은 듣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그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친구가 가난한자, 죄인 등이 많은 이유는 그들이 거룩해서가 아닙니다. 먼저 하느님이 부족한 그들을 먼저 챙기는 마음이고, 더불어 그들은 자신의 것을 쉽게 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이 보여주신 주님의 길을 따르겠다는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 역시 삶속에서 진정 예수님의 삶을 따르고자 하는지, 자신이 바라는 바를 버릴 수 있는지 묻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