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 기대, 삶의 상태로서의 제자도, 이것들은 모두 ‘제자’란 ‘따르는 사람’이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렇게 귀 기울여 인식하고 기대감을 갖는 것은 따르는 행위를 전제로 합니다. 인식하고 기대하는 행위는 기꺼이 주님 계신 곳을 찾고 주님 가시는 곳으로 따라나서는 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주님께서 가신 곳을 살펴보면, 그곳에 우리도 갈 만하다거나,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처형 도구 곧 십자가를 지고 그분 가시는 길을 따른다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여기서 루가복음 14장을 살펴봅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서는 안 되는지 계속해서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참 감당하기에 힘겨운 말씀입니다. 예수께로 나온 사람들은 부모나 처자식, 형제자매보다 그분을 더 사랑하지 않으면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루가 14:26). 당연히 자기 자신보다도 그분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가 14:27). 제자가 되는 일을 두고 이처럼‘할 수 없다’고 말하는 언어가 14장 전체에서 경종을 울리며 이어집니다. 하지만 요점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주님 계신 곳에 함께하려고 할 때, 여러분 생각에 자랑스럽고 평안한 일로 떠오르는 것들만으로는 여러분이 있게 될 자리가 어떤 곳인지 결코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있게 될 자리는 여러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여러분의 특성이나 관계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주님께서 정하십니다. 주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분과 여러분의 관계에 비추어서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결정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만약 다른 관계들이 이 기본적 관계를 왜곡시키면서까지 여러분을 규정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행복은 물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 극히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계획하거나 실현할 수 있는 일 이상으로 사랑의 가능성까지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느님을 덜 사랑하면 그만큼 모든 사람과 모든 것도 덜 사랑하게 됩니다. 주님을 따르는 목적은 그분과 한 자리에 있기 위해서입니다.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서로 약간 다른 두 가지 방향에서 이 개념을 다룰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주 자명하면서도 신약성경의 제자도에 관해 생각하는 데 중요한 개념입니다. 예수께서 계신 곳에 있다는 말은 예수께서 찾으시고 지키시는 사람들의 무리 안에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께서는 소외된 사람,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들의 무리를 선택하시며, 그래서 여러분도 그 무리에 들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께서 계신 곳에 있기를 원하고 또 간헐적인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제자도를 실천한다면, 당연히 여러분은 그분이 계신 그 인간 무리에 속하게 됩니다. 이 사실은 또 제자도가 우리의 무리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의 무리를 선택하는 일과 관계가 있다는 점을 다시 깨우쳐 줍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의 무리를 위해 우리가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