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일 문제들에 맞서고, 의지와 자유와 선택을 에워싼“어둔 밤”에 맞대응하며, 또 이런 실체들을 우리 자신과 문화가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꿰뚫어 볼 수만 있다면, 사랑으로 자라갈 준비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사랑, 그것은 받아들이는 자유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랑,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을 내서 염려를 내어 쫓도록 힘을 줍니다. 사랑, 그것은 우리를 풍요롭게 하고,“헌신하여”살아 움직이게 하며, 생기로 충만하게 합니다. 사랑은 사람들이 흔히 그리는 모습처럼 수동적이 것이 아니라, 기쁨을 향해 열린 상태를 가리킵니다. 사랑은 선을 행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관상을 통해 세상과 인류 전체, 구체적인 한 인간, 하느님을 존중하는 일입니다. 바울은 고린토전서 13장에서 사랑에 관해 논하면서, 사랑은“선을 행하는”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밝힙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기뻐하고, 다른 사람의 실패를 즐거워하지 않으며, 생명과 기쁨을 낳는 진리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사랑은 사랑받음으로써 태어납니다. 요한1서에서 말하듯이,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1요한 4:10). 우리를 떠나가지 않으시는 신뢰할 만한 존재, 우리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시고 한결같은 눈길로 응시하시는 존재, 우리가 누구인지를 영원토록 흔들림 없이 증언하시는 분, 그 존재가 바로 사랑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헤아리고 이해하고 붙잡으며, 무엇보다도 우리를 환영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기쁨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우리의 마음과 정신 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면, 교회의 근본적 실체가 무엇이고 교회가 구현해야 할 모습이 어떤 것인지가 분명히 드러나게 됩니다. 그때 교회는 시공간 속에 자리 잡아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사랑을 경험하게 해주는 자리가 되고, 그 어떤 것도 문밖으로 내침받지 않는 곳이 되며, 또 시종일관 많은 일을 요구하는 세상, 곧 주고 거래하고 베풀며 그 자리에서 변화를 이루라고 요구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자리가 됩니다. 우리 자신을 내려놓고, 염려 가득한 이기심과 끊임없는 선택에 대한 집착을 놓아 버림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기쁨 말입니다. 신뢰와 인내심으로 품어 주는 자리가 되는 것이 교회에게 큰 도전이듯이, 사람들이 마음을 열 수 있을 만큼 평온한 자리가 되고 우주의 궁극적 진리가 그들에게 베푸는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을 만큼 안온하고 염려 없는 자리가 되는 것도 역시 교회에게 맡겨진 커다란 도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