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주의 기도에도 등장하는‘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이유는 그저 나의 결핍이나 단순한 음식에 대한 굶주림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간구를 넘어 하느님의 미래에 대한 갈망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새로운 창조, 곧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양식입니다. 이 사실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와 용서를 구하는 기도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호 화해는 성령 활동의 표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서 열린 급진적이며 새로운 가능성입니다. 이 자체는 하느님의 미래가 지금 일어나고 있다는 징표이며,‘내일의 양식’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성찬례 안에서 깨닫는 바와 같이, 우리가 서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인간의 존엄성을 서로 인정하는 일은 하느님의 미래를 우리 인간의 경험 속에서 미리 맛보는 사건입니다.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이라는 맥락에서 어떻게 이름을 붙이든‘내일의 양식’이라는 성사적 현실이 펼쳐집니다. 만약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높여 주기 위해 내 자원을 나눠 주는 일에서 가장 힘든 것이 용서이고 또 다른 사람을 섬기는 여러 가지 방식에서 가장 자연스럽지 못하고 반문화적인 형태가 용서라면, 용서를 미래에서 오는 선물 곧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심어 놓으신 목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때 허락되는 선물로 보는 것은 매우 타당합니다. 따라서“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라는 구절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뜻도 당연히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이 순간을 넘어서고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서 벗어나 위를 바라보라고 가르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오늘을 평화와 희망 가운데 살기 위해 하느님의 미래를 미리 맛보기를 구하는 것이요, 사도 바울의 말로 하면 하느님의 미래에 대한“보증”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며 그 보증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2고린 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