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공적 영역에 끼칠 수 있는 가장 큰 영향은 근본적 존중을 구체적 행동에 담아 전하는 메시지로 이루어집니다. 이런 메시지를 담아낸 활동은 사회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는 잠재력을 지닙니다. 그 결과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인간을 위한 새 가능성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교는 환경 문제처럼 표를 얻는 데 효과가 없어서 주류파 정치 집단의 지원을 받기 어려운 운동들을 전면에 내세우기에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세속 민주주의 과정이 겉으로는 합리적이고 공정해 보이나, 선거 과정에서 제기되는 여러 요구들에 쉽게 휘둘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나라의 번영을 다루는 큰 규모의 쟁점들이 이러한 갈등을 압도하며, 그래서 장기적 중요성을 지니는 여타 문제들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일이 어렵습니다. 교회는 정치적 흐름이나 다수 의견에 흔들리지 않고 인간 본성을 이해할 수 있는 까닭에 이러한 장기적 문제들의 후견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와는 별개로 자체의 온전함과 의미를 추구하는 공동체들이 제시하는 도덕적 비전에 국가가 귀 기울여들어 주는 양태를 띨 때, 건강한 민주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국가를 교회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대신, 인간성을 최고로 구현하는 공동체의 삶의 형식과 방향을 국가와 전체 문화에 제시합니다. 완고한 세속 사회는 자기폐쇄적이 되거나, 극단적 비판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도덕 전반의 우선적 문제들을 다루는 토론의 장을 갖추지 못하며, 변화를 거부하게 되는 위험을 늘 안고 있습니다. 이렇게 진정한 공동체의 형식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그리스도교가 공적 영역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전혀 다른 관점, 곧 사리를 추구하는 집단으로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관점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리스도교는 국가와 법의 대화 상대자가 되며 이른바‘비판적 지지자’의 역할을 합니다. 또 국가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의 근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일반적 사회 도덕의 천박함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리스도교는 국가를 향해 자신이 대변하는 공동체인 하느님의 나라를 본받아 변화되라고 요구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정치를 통해 이 땅 위에 하느님 나라를 이룰 수 있다는 그릇된 주장을 펴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세워 가는 공동의 삶 속에서 하느님 나라의 약속을 좀 더 구체화하고 가시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합니다. 간단히 말해, 그리스도교는 국가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이 세상에 속한 더 높은 힘에 종속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느님의 관점에서 보아 상대적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고 흔들림 없는 사랑의 눈으로 다른 사람들, 특히 큰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헤아리도록 부름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