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모두에게 버림받아 홀로 동산에서 근심하며 괴로워하실 때, 모든 유혹의 힘이 그분을 둘러쌀 때,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그분에게 힘을 주었다고 복음서는 증언합니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이 간구를 통해 우리는 그 힘을 구합니다. 그리스도께 주셨던 그 신비로운 도움을 우리에게도 내려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래서 악과 고통과 유혹에도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간구합니다. 소망이 약해지거나 사랑이 고갈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 마음을 어둠이 장악하여 우리 마음이 악의 연료가 되어 버리지 않게 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신뢰하셨듯 우리 또한 아버지를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 그분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모든 유혹을 없애주시리라는 신뢰가 이 간구에 담겨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악에서 구해 달라고 아버지께 간구합니다. 이 구절의‘악’은 그리스어 원문‘아포 투 포네루’에서 유래합니다. 이 단어는‘악’뿐만 아니라‘악한 이’로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이 간구는‘악’, 또는‘악한 자’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기보다, 악한 자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악의 인격적인 속성, 악을 실어나르는 것이 어떤 초월적 존재가 아닌 사람이라는 점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증오’라는 견고한 실체는 따로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를‘증오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증오가 지닌 힘은 사람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간구를 통해 무언가 비인격적인 악한 힘이 아닌,‘악한 자’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므로 악을 이기는 것은 어떤 추상적인 이론이나 협약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악을 선으로 이길 때야 선은 승리합니다. 우리가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 매 순간 다가오는 유혹 혹은 시험을 이겨야 하는 이유, 침울한 악 대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택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일상을 이루는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었습니다. 새로운 승리의 가능성이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이 기도는 새로운 질서, 새로운 승리를 예고합니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