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감사성찬례’라고
말하지만 그 때는 ‘미사’라고 말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일요일에 드리는 미사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중심이 되는 예배입니다. 일요일 외에 목요일 저녁 7시에 목요미사가 있었고 토요일 오후 4시에 토요만도가 있었습니다.
불교 배경이신 어머니께서는 기독교에 관대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일요일에 집을 출발해서 교회 나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토요만도에 자주 갔고 가끔 목요미사에 갔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중에 교회에 들리는 것인데 어머니께서는 제가 중간에 교회에 들린다는 것을 알지 못하시고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조금 늦게 집으로
오는 줄로 아셨습니다.
태어나고 나서 처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기에 다른 교회도 다 그렇게 일요일, 목요일, 토요일 세 번 예배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같은 반 친구들의 교회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면서 교회생활을 조금씩 배워갔습니다. 그런데
친구들과 많이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목요미사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은 하나 같이 수요일에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 교회는 목요일에 미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제가 수요일이 아닌 목요일에
교회에 간다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처음 다니는 저로서는 그들이 수요일에 교회
간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우리가 저들과 다르게 목요일에 예배 드린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심지어 몇 달 전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주중에 드리는 예배가 다른 날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수요일입니까?”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뭐 딱히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수요일이 성경에 있는 내용인지에 대해서도 물어보았지만 똑 부러지는 얘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목요일은 나름 의미가 있습니다. 부활절 직전의 성 주간을
떠올려 본다면 말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목요일은 건립성체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라고 말씀하신 그 날이 목요일입니다. 그러니 목요미사는
수요예배보다는 성경적 근거가 있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 교회도 나중에 목요미사를 수요미사로 변경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목요미사에서 목요일 보다 더 강력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수요일로 미사를 이동한 것은 교세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성공회’라는
이름 때문에 ‘이상한’ ‘이단 같은 느낌’의 교회인데 세상 모든 교회가 수요일에 예배 드리는데 우리 교회만 목요일에 예배 드리는 것이 부담되기 때문에
수요일로 바꾸었을 테니까요.
나중에는 교세니 뭐니 하는 그런 생각도 버렸습니다. 하루 하루가, 매시간 매시간이 더 나아가 들숨과 날숨 쉬는 그 모든 시간이 예배의 시간인데 수요일이면 어떻고 목요일이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교시절에 제게 많은 영향을 준 것은 토요만도였습니다. 성인은
거의 없었고 학생 몇이 참여했습니다. 관할사제님께서 인도하신 적도 있기는 하지만 주로 이재중(베드로) 교회총무님께서 인도하셨는데 무척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경건함을 이루어 내시는 독특한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아주 가끔은 저 같은 학생들에게 만도를 인도를 해보라고 기회를 주셨는데 저 역시 몹시 긴장하면서 몇 번 만도를 인도한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사용했던 1968년도판 공도문에 있는 토요만도 기도문은 문장이 옛스러워서 무척 좋아했습니다. 성 시메온 성가, 성모 마리아 성가의 선율을 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요. 그리고 가을날의 토요만도는 성스러움의 극치였습니다. 교회 뒤편의
세로로 된 그 긴 유리벽을 통과해온 그윽하기 짝이 없는 가을 볕이 교회 안으로 쏟아질 때의 그 거룩한 광경은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숨막힙니다.
우리 교단의 특징인 말씀과 성사의 온전한 조화가 아니었다면 아마 중간에 교회를 그만두었을지도 모릅니다. 말씀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성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왔고 말씀과 성사 그 상호간의 아름다운 보완이 제가
지금껏 성공회를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됩니다. 성공회, 제게
딱 맞는 교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