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슬픔은 반대말이지만 기쁜슬픔도, 슬픈기쁨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기쁜 자녀 결혼식날, 회갑.칠순 기쁜 잔칫날, 기쁨에 넘친 슬픔을 보게 됩니다.
2년 전, 축성일 기념행사로 청년회 주체 음악회가 열렸을 때 무대에서 딸이 흥에 겨워
청중석 교인들과 손으로 박자를 맞추며 율동을 곁들여 노래를 할 때,
또 아들이 무대에서 흥겹게 율동을 할 때 청중석에서 이 아빠는 갑작스런 울컥함에
계속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 애들 어미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가끔 덤덤한 이별을 생각해 봅니다.
이별로 인한 깊은 슬픔도, 긴 슬픔도 없는 그런 이별 말입니다.
더욱이 상가집에서 '호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이냐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애들 어미 엘리사벳, 그 라일락꽃이 채 피기도 전에, 씨도 맺지 못하고 병마에 시들어
돌아오지 못하는 저 세상으로 간 이후
저는 자주 벗하던 친구들과 멀리 하거나 교제를 끊고,
나홀로 지냄이 제일 편하다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저 세상으로 떠남을 저 세상으로 떠났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간단히 죽었다고라고 뒷말함이 미워서,
홀아비 초년생으로 업신여겨 날 이렇게 대하는구나하는 고까운 마음이 앞서서
영원히 그들과 멀리하려고 합니다.
먼 훗날 라일락을 만났을 때, 야단 안 맞으려고 약 1년전 택시핸들을 잡고 열심히 먹고 살려고
정처없이 슬픔을 곱씹으며 밤낮없이 달렸습니다.
하루에 평균 200~250Km을 달렸습니다.
다음 날 출근시간 대에 무리가 없으면 휴일에도 공휴일에도 또 달렸습니다.
맞벌이가 아니라 홑벌이 생활이고, 젊은 택시가 아니고 늙은 택시이다보니,
천원짜리 김밥 한줄 사서 질겅질겅 씹으며 시간아껴 달려야만 그럭저럭 생활유지가 되더군요.
어느 손님이 그런 말을 하데요. 이 짓이 앉은뱅이 장사라구요.
저는 지금 앉은뱅이가 되었습니다. 집안에서 조차도 제대로 서지도, 걷지도 못하겠네요.
이 나이에 벌써 소변통을 아들 시켜 건수하게 되니
더더욱 우리 라일락 인생말년, 병마에 시달려 체중 50kg 이 40kg 미만으로 줄었던 그 때가 슬프게 떠오릅니다.
다리마저 온전치 못하여 다리를 질질 끌며 빈가게 지키겠다고 나왔다가
속 좁은 이 사람과 다투고 속상해 했고 아직까지도 한 맺고 있음에 대한 벌을 지금 받고 있습니다.
11월 12일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출입문 밖에서 김앵니스 교우와 정요한 회장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으려 나간다고 대답은 했는데, 이 놈의 발바닥이 제대로 떨어져야지요.
정상적으로 나가면 채 다섯 발자국도 안 되는 실내인데도, 침대에서 아픈 다리 하나 내려놓는 데도
몇분 걸리고, 벽과 벽을 조심스럽게 짚으며 발바닥을 조금씩 미끌이며 이동하다보니
족히 20~30분은 걸린 것 같습니다. 반기지 않는 손님 억지로 맞는 것 같았습니다.
차라리 네 다리로 기어가는 것이 넘어질 염려 없고 더 빠를 수 있는데 무릎이 시큰대니
그 것도 안 되네요. 두 다리로 성큼성큼 걸으시는 교우님들 많이 많이 부럽게 보입니다.
신부님께서 성체를 모시고 오셨습니다. 조병성사 올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머님 돌아가시기 전 병원침상에서 온 가족이 슬픔 가운데 올렸던 조병성사 생각이 났습니다.
겨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찌나 울었는 지 몸 전체가 후끈하였던 그 때 생각이 났었습니다.
성체성사 관련 성가를 부르는 데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네요.
성가를 더 이상 같이 부를 수가 없네요. 성가가 왜 이렇게 저를 슬프게 합니까?
정회장이 '쾌유기원'이란 글이 써진 흰 봉투를 내밀며 전교우 모금이라고 하신다. 황당해졌습니다.
내가 교회에 기여한 게 무엇이 있으며, 이것을 받을 자격이 하나도 없다고 극구 사양하였지만
막무가내시다. 사람이 무능하다보니 전 교우님들께도 민폐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고백합니다.
매주 일요일 성수도 불성실하였고, 십일조생활도 거의 못하고, 바우로회비도 못 내왔던 나였음을.
어느 한 가지도 교회에 덕이 못 되었음을, 모든 면에서 자격이 없음을,
하물며 제 처 먼저 보내 이 세상에 살 자격조차 없음을...
우리 교우님들 대다수가 경제생활에 여유가 없으신 빠듯한 생활을 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더욱 마음이 무겁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됩니까?
잔말 말고 빨리 두 다리로 걸어서 교회 나오라구요?
네. 그러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떻게 해야될 지를 또 생각하겠습니다.
눈물겹도록 크나큰 전교우님들의 사랑. 고맙게 생각하며,
그 고마운 손수건으로 눈물 한방울, 두방울... 닦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