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이장근 알어?”
이 한 마디가 제 삶을 엄청나게 바꾸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몇 달 안되는 1974년의 어느 날입니다.
반팔의 하복 차림이었으니 아마도 초여름이었겠지요.
같은 반에 이장희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건 너>로 유명한 가수와
같은 이름이어서 그 누구라도 한 번만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이름입니다.
그 이장희가 학교 계단이 꺽이는
부분에서 ‘이장근을 아느냐고’ 제게 물어왔던 것입니다.
이장근은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습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한 교실에 있던 사람이니 모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이지요.
“이장근? 중학교 동창인데?...”
“걔, 나랑 같은 교회
다니는데 한 번 와볼래?”
어 그래? 장근이랑 같은 교회라구?
그러나 그 자리에서 교회에 나가보겠노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종교가 없었는데 종교인의 건전하지 못한 부분을 여럿 보셨기 때문에 종교를 멀리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종교활동을 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아무래도 불교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한 집안에 모시는 신이 둘이 되면 안 된다’
는 생각을 여러
번 피력하셨기 때문에
어머니의 종교적 심성과 반대편에 있는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
고등학교 1한년 학생이
단독으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장희의 권유가 있고 난 후 잠시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다가 몰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영적 갈급함 같은 것이 있어서 교회를 다닌 것은 아닙니다.
‘영적’이라는 단어도 알지 못하였으니까요.
교회 출석을 결심한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교회 거기에 여학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1974년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빵집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 것도
‘이거 혹시 걸리는 거 아냐?’
하고 염려하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한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교회 다니는 친구들이 교회에서는 그런다고 말했습니다.
모범생에 가까운 제게는 여학생을 만날 기회가 전혀 없으니
그런 제게 교회는 별천지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시절 그나마 이성간의 건전한 만남은 교회 밖에 없었으니
적어도 그런 점에서 그 때의 교회는 높이 평가받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교회를 가기 위해 일요일에 집을 나서는 것은
어머니께서 금방 아실 수 있는 일이고 그 즉시
마찰이 일어날 것이 너무나 뻔했기 때문에
토요일 오후에 봉행되는 만도(晩禱, 저녁기도)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토요 만도는 오후 4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교회 들렀다 집에 가는 것이기에 어머니께서는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늦었나 보다’
하셨을 겁니다.
그 때 왜 장희가 장근이를 거론하면서 저를 교회로 초청했는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습니다.
어찌되었거나 이렇게 해서 중학교 동창인 이장근(아브라함)과
고등학교 동창인 이장희(요셉)라는 두 날개가 있어서
동대문교회에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의
이장근(아브라함)은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이장근(아브라함) 바로 그 사람입니다.
때로
유튜브를 통해 감사성찬례에 복사로 참여하는 오랜 친구를 봅니다.
흐믓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