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폭스, “여러분이 ‘성모’이며 ‘복음사가’입니다”
서울에서 ‘창조성―신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 주제로 강연
(출처- 2014년 7월 24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정현진 기자 | regina@catholicnews.co.kr)
매튜 폭스 신부
저명한 영성사상가인 매튜 폭스 신부(성공회)가 한국을 방문해 종교 관계자와 시민들을 만났다.
폭스 신부는 지난 20일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생태영성 간담회와 가톨릭 에코포럼에 참가해 ‘창조 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으며, 간담회에는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등 각 종단 신학자들과 수도자, 생태환경 활동가 20여 명이 참여했다. 이날 열린 간담회와 포럼은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와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주최로 진행됐다.
“한국 사회는 정말 중요한 역할과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급속히 후기 산업사회로 들어왔음에도 샤머니즘, 유교, 불교 등으로부터 영적인 기억이 남아 있는 사회로서 현재 서구가 겪는 물질주의적 경로를 거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매튜 폭스 신부(오른쪽)가 20일 열린 가톨릭 에코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지적 호기심 많은 한국…“영적 차원의 발전 가능성 믿는다”
먼저 폭스 신부는 오전 10시에 열린 간담회에서 참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한국을 방문한 이유를 “배우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한국의 환경운동공동체와 종교공동체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이 시기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배우고 싶었다는 그는 “한국에는 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들이 100% 샤머니즘을 믿고 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원주민들의 지혜, 모더니즘 이전의 지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구의 생태적 회복을 위해 샤머니즘, 예를 들면 인디언들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매튜 폭스 신부는 특히 한국의 샤머니즘은 많은 경우 여성들이 이끌고 있다는 것에도 주목하면서, “성평등은 지구상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또 1960년대부터 빠른 성장을 이룬 한국 사회는 산업 사회로 빠르게 진입했고, 해외에서 한국이 생산한 상품들을 경이롭게 보고 있지만, 우리에게 미래가 있느냐의 여부는 기술 발전이 아니라 심리 영성적 발전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한국은 신학을 포함해 여러 방면에서 지적 호기심이 많은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한국이 영적 개발을 통해 환경운동 등의 분야에서도 영적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격려했다.
▲ 지난 20일 오전 간담회에 이어 오후에는 가톨릭 에코포럼이 열렸다. 매튜 폭스 신부가 강연자로 나서
‘창조성―신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를 주제로 이야기를 전했다. ⓒ정현진 기자
“인간의 창조성은 위대하면서도 위험,
정의와 자비의 가치로 비판받아야”
간담회에 이어 오후 2시 가톨릭회관 7층 강당에서 열린 가톨릭 에코포럼에서 폭스 신부는 ‘창조성―신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정의와 자비, 치유가 없는 창조성은 열대우림을 파괴할 수 있고, 가스실을 만들어 사람을 희생시키고, 핵무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안의 창의성은 홀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자비라는 가치를 통해 비판받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는 우리 후손들을 위한 것이며, 인간의 창조성은 위대하면서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폭스 신부는 인간 모두에게는 창조성이 있지만 그 창조성은 위대함과 동시에 위험하다면서, 창조성을 건강한 길로 이끌어야 하며, 정의와 자비, 치유를 위한 창조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창조 영성은 가장 오래된 영성이며, 온 우주에 가득하고 우리 일상 모든 것에서 발견된다면서, “창조성은 바로 생명의 움직임이며, 창조하는 매 순간 우리는 성령과 만나고, 성령의 도구가 된다. 그 힘이 매 순간 우주를 새롭게 창조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느님이 자연 속에서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계시이며, 그리스도의 지혜는 바로 창조성 때문”이라며 “가부장적 종교는 자연을 무시하고 창조성을 파괴한다”며 비판했다.
“우리는 모두 창조적이며, 창조능력이 있습니다. 창조성, 즉 거룩한 상상력을 통해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습니다. 다시 아름답고, 건강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다른 세상 말입니다.”
매튜 폭스 신부는 우리 안의 창조 영성을 건강한 길로 이끌기 위한 방법으로 네 가지 길을 제시했다. 삶에서 기쁨을 느끼고 삶을 사랑하는 ‘긍정의 길’, 침묵과 고통, 슬픔과 어둠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부정의 길’, 창조성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창조성의 길’, 그리고 ‘정의, 자비, 치유의 길’이다.
그는 세 번째 창조성의 길은 긍정의 길과 부정의 길이 함께 어우러질 때 이뤄지며 결과적으로 정의, 자비, 치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면서, 네 가지 길 모두가 창조성의 길을 제대로 가기 위한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또 하느님은 질서와 통제의 상징이 아니며 오히려 ‘혼돈’ 속에 계시는 분이라면서, “하느님은 혼돈 속에서 창조성을 발휘한다. 혼돈은 바로 창조력이 태어나는 장소이며, 부활한 예수가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창조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해가 뜨고 지는 곳에서 온다고 합니다. 온 우주는 창조성으로 가득하지만, 우주를 유기체가 아닌 하나의 기계로 바라보는 이데올로기는 우주가 지닌 지혜를 지워버립니다. 우주는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매 순간 새로운 것을 낳습니다.”
▲ ⓒ정현진 기자
매 순간 ‘예수의 어머니’이자 ‘복음사가’가 되어야 할 현대인
폭스 신부는 여전히 성령이 우주 안에서 움직이며 새로운 생명을 낳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태고적 성령은 지금 우리 안에 예수를 잉태시키고 싶어 한다. 오늘날 우리가 여기에서 다시 예수를 낳지 않는다면 2000년 전 예수는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지구상에서 책임 있는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매 순간 복음을 써야 한다”면서 “우리는 모두 예수의 어머니가 되어야 하고, 우리가 낳는 모든 것은 예수”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오늘날 우리에게 창조성이 가장 필요한 분야는 교육과 경제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에 창조성이 없다는 것이 전 세계적인 문제라면서, 교육의 위기는 창조성과 직관이 부재하고 여성성과 지혜를 버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혜가 아닌 지식공장으로서 교육이 지구를 죽이고 있으며, 교육은 직관과 이성 사이에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무엇보다 창조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영역은 ‘경제’”라면서 “‘월스트리트를 정복하라’는 구호는 실패했지만,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위한 경제’를 만들어낼 역량이 있다”고 말했다.
매튜 폭스 신부는 영성사상가로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비롯한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전통에 대한 연구자다. 한때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의 가톨릭 사제였으며 현재는 성공회 소속이다. 1978년 미국 시카고에서 홀리 네임스 대학의 문화와 창조영성 연구소를 창설했으며, 저서로 <원복>, <우주 그리스도의 도래>,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있다.
<강연회 참석 후기>
매튜 폭스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신학자인가 보다. 반면에 나는 그의 이름이 낯선데다 수많은 저작 가운데 셈해 보니 아직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날 강연회를 찾아간 이유라면 오로지 한 가지, 생태신학자란 이름에 이끌렸기 때문이었다. 푹푹 찌는 여름 더위에도 구름처럼 몰려든 청중들. 그 넓은 강당을 다 채우고도 출입문에 이르는 복도까지 사람들로 메워져 비좁기 짝이 없었다. 청중의 다수였던 성직자(특히 수녀)를 감안한다 해도 대단한 인파가 아닐 수 없었다. 이는 강연 끝나고 저자의 서명이 이어진 때에서도 드러났다. 한글판 책은 물론이고 영어책 네댓 권을 준비해온 독자들도 꽤 됐는데 그런 독자만 해도 200명은 좋이 될 성싶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의 이재돈 신부가 인사말에서 연사를 소개했다. 매튜 신부는 논쟁적 인물이다. 아시다시피 이 신학자는 “천주교 신부였으나 좀 더 자유롭게 활동하고자 지금은 성공회 소속인” 신학자다. 그래서인지 왜 굳이 오늘 강연에 초청했느냐 하는 다른 말도 나왔었다. 그렇다고 해서 유명한 이 신학자를 우리의 정례적인 에코포럼에 초대하지 못할 이유란 전혀 없었다.
3 시간 가까이 이어진 강연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하기란 쉽지 않을 게다. 통역을 담당한 이(신학 교수)가 매우 뛰어났다. 정확한 전달 뿐 아니라 지식의 방대함에 놀랐다. 그럼에도 두 개의 언어로 주고받는 행위는 독해와 이해력의 연쇄과정을 어디에선가 흐트러뜨리는 게 있는 것 같았다. 더욱이 이날 강연에서 매튜가 말한 인물(영성가, 사상가)만 해도 따라가기 힘들었다. 본문 기사에 실린 사람들 말고도 토마스 베리, 토마스 아퀴나스, 빙엔의 힐데가르트, 마틴 루터 킹,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 클라리사 에스테스, 불교 사상가들... 위 정현진 기자의 글에도 그런 어려움의 흔적이 묻어난다. 강연 이후 일주일 가까이 끌어온(?) 시간만 봐도 그렇다^^. 어쨌든 정 기자가 핵심을 잘 짚어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존재가 고맙다.
그런데 청중의 질문까지 한데 묶어 기사를 작성하는 언론매체는 드물다. 개개인의 질문이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올 법하고 대개 실천적 함의가 담길 텐데. 이를테면 이날 제기된 몇 개의 질문이 그랬다. “10년 전 미국에서 공부할 때 박사를 처음 뵈었다. 오늘이 두 번째여서 감개무량하다. ...나는 어쨌든 희생자가 되기는 싫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느 종교이든 근본주의가 문제다. 이들과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원복(Original Blessing)을 감명 깊게 읽은 독자다. 그런데 내게 신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는 여전히 안개 속에 숨어 있다. 이런 나에게 어떤 조언을 주시겠는가?” 예의 질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여성들이 제기했다. 매튜의 답변을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다.
마지막이었던가, 30대로 보이는 청년(남)이 일어나 질문했다. “성공회 신자다. 그리고 동성애자다. 우리 성공회 신부님은 이러신다. '너의 태도는 개인적으로 존중한다. 하지만 성공회의 공식적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다.' 이에 대한 신부님의 답변을 듣고 싶다. 그리고 성공회 신부이시잖은가. 성공회 교인을 대상으로 강연회를 따로 마련하셨으면 좋겠다.” 폭스 신부가 서슴지 않고 이렇게 답변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한다. 그런데 하느님은 이성애자만을 사랑하실까? 하느님은 다양성을 사랑하신다. 동성애자는 분명 소수다. 과학이 말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2%~8%까지 동성애자로서 정체성을 가진다고. 우리 집 개도 아무리 봐도 동성애자로 보인다. (청중 폭소) 따라서 동성애자는 소수이자 특별한 사람들이다. 특별하다고 잘못은 아니다. 동성애자를 용인하지 못하고 심지어 사탄으로 모는 사람들과 교회가 있다. 어리석은 짓(스투피드)이다. (청중 웃음)”
질문시간마저 끝났을 때, 그 청년 교우가 반가워 만나봤다. 성공회대 학생이었다. 곁에는 대여섯 명의 일행이 있었다. 모두 성공회대 학생들. 그네들도 내가 반가운가 보다. 나중에 나도 긴 줄에 서서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첫 번째 책갈피에 저자의 서명을 받았다. 간단히 나를 소개하자 크게 반기면서 서명해줬다. 경귀를 연상케 하는 짧은 말.“도미니크에게, 희망과 놀라움으로.” 서명이 새겨진 그의 책, 이젠 의무로서 읽어야 하는가. 즐거운 강연회였다. - 새벽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