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5일 <한겨레> "휴심정"
글쓴이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남미 신학 탐방단의 홍인식 지도교수의 지도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민중성서읽기를 하고 있는 신학대학원생들.
해방신학의 핵심중 하나가 ‘민중성서읽기’다. 목사나 신부가 읽고 해석한 성서를 일방적으로 평신도들에게 가르치는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읽는 것이다. 그럴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멕시코장신대 홍인식 교수도 아르헨티나에 살때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앙감리교회에서 노숙자들과 민중성서 읽기를 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의 여인 일화는 여러번 남편을 바꿔 여섯번째 남편과 사는 부정한 여인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해 정화된다는게 일반적인 읽기다. 그런데 함께 성서를 읽던 여자 노숙인은 “내가 바로 그 사마리아 여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한번도 남편을 바꾼 적이 없다”며 “남자들이 나를 강간하고 가지고 놀다가는 아이가 생기면 도망가버리곤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남자들은 그러고도 돈을 벌어오지 않는다고 나를 때렸지만, 나는 남자들이 버리고 간 아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안 해 본일이 없다”고 했다. 그 여자노숙인의 주장대로라면 부정한 인간은 그가 아니라 그를 능욕하고 책임지지도 않은 여러 남자들인 셈이다.
이번 탐방을 기획하고 동참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 배경임(50) 부장도 지난 2007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예지교회의 ‘구타 당한 어머니 쉼터’ 전도사로서 민중성서읽기를 한 적이 있다. 평생 매 맞고 다니고, 도망을 가고 이혼을 해도 소용이 없이 쫓겨다니는 이들을 신학적 지식만으로 위로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년간 함께 성서를 읽으면서 그들은 스스로 자존감을 찾아가고, 신과의 관계를 회복시켜갔다.
배 부장은 같은 방식의 성서 읽기에 목회자들도 설교를 힘들어하고, 듣는 이들도 천편일률적인 일방적인 설교로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민중성서 읽기가 결여됐기 때문으로 본다. 그는 한국식 해방신학으로 볼 수 있는 민중신학도 민중성서읽기가 빠진게 한계가 아니었나싶다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의 진보운동이 한계점에 이른 것도 민중성서읽기와 같은 현장성이 빠지고 엘리트주의에 경도된데 큰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정부는 아이들이 계속 학교에서 쫓겨나 거리로 나서고 죽어가는 등 이미 낳은 아이들은 내팽개친 채 출산율 제고 등 공허한 소리만 외쳐대고, 진보적인 학자들도 관에서 연구비 지원이나 받는 것에나 기웃거리지 정작 민중들이 실제로 고통 받는 것을 연구하고 고뇌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학문이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져 있어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운동과 진보운동 성패를 ‘민중들을 포(for·위하여) 가 아니라 위드(with·함께)’하는 현장성의 회복 여부로 본다.
같은 날 같은 신문에서
해방신학 현장 본 목사후보생들
탐방단들이 느낀 해방신학
한국에서 온 목사후보생들과 3시간 동안 열띤 질의 응답을 주고 받은 상파울로감신대 신학과 교수들
상파울루감신대에서 이 대학 인문법학장이자 해방신학 2세대 선두주로 꼽히는
한인 1.5세 교포 성정모 교수와 함께한 탐방단들
`통전적 선교'의 창시자인 레네 파딜라 박사(오른쪽) 부부
탐방단과 함께 기도를 올리는 레네 파딜라 박사 부부
이번 탐방에 함께한 12명의 신학대학원생들은 기초공동체나 교회 뿐 아니라 신학대학교를 찾아 남미의 신학에 대해 들었다. 이 대학에서 교수를 하는 독일인 헬무트 교수가 민중신학이나 한국적 상황에 대해 물었을 때,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학생들은 서구신학만을 편식하며 정작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 대해 알지 못하는 자신을 깨닫기도 했다. 장신대학원생 홍창현씨는 유학을 가서 다른 나라 신학을 공부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상황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성찰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다”고 말했고, 호남신학대학원생 배성현씨는 “한국의 독창적인 역사를 더 공부할 필요를 느꼈고, 한국의 상황에서 해야할 일을 고민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신학생들에게 충격은 현장과 분리되지않은 신학자들의 삶이었다. 탐방단이 방문해 3시간동안 대화한 상파울로감신대(종합대) 신학과 교수 4명은 모두 현장 사역을 병행하고 있었다. 헬무트 교수도 독일연합감리교회 파송 선교사로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5년간 사역하다가 이 대학에 왔다. 남미 대학의 전통은 신학자들이 반드시 현장 사역지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번 탐방단을 이끈 멕시코장신대 홍인식 교수도 아르헨티나 해방신학의 산실로 꼽히는 아르헨티나연합신학대(ISEDET) 교수로 재직하던 1999~2002년 인디오보호구역에서 사역했다. 그는 현재 이세대 학장인 메르세데스 가르시아 바흐만 교수와 함께 매달 한번씩 버스를 12시간이나 타고, 다시 인디오들의 지프차를 세시간이나 더 타고 차고지역으로 들어가 1주일간 그들과 함께 먹고 함께 자며 지냈다.
학생 중 장신대학원생 이혜선씨는 “처음 해방신학이 투쟁적이란 선입견 때문에 그들을 탐방하는 것도 두려웠지만 신학과 삶이 일치된 종교인들의 모습에서 책에서 느껴보지 못한 감동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김양우씨는 “나를 깨고 부수고 깨우고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했고, 최은정씨는 “20대 초반부터 신앙과 삶의 괴리가 가장 큰 고민이었는데, 이런 사역의 모델들을 보면서 해답을 찾아가게 됐다”며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상황에서도 빈민촌 기초공동체에 헌신한 자이메 신부를 보면서 희망과 기쁨과 감사를 동시에 느꼈다”고 말했다.
또 최지영씨는 “목회자가 되려하면서도 현실에 나이브했다는 반성이 들었다”며 “앞으로 인문학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한국 기독 청년들이 나아갈 방향을 좀 더 진지하게 성찰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홍성호씨는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며 “이로써 고착화된 교리를 넘어서는 설교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수진씨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며 “자유롭게 민중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항상 내가 답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감신대학원생 김승민씨는 “교회 안에만 묶여 있었던 나의 신학에 ‘해방’을 준 사건이었다”면서 “지금까지 신학을 배우고 사회적 역할을 감당하지 않는 교회를 보며 방향을 잡을 수 없었는데, 현장과 함께 하는 해방신학을 보면서 교회가 정말 무엇을 해야하는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고백했다. 장신대학원을 졸업생인 최윤승 목사는 “한국 교회의 신뢰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지않을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번 탐방의 실무자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 박현철 간사는 “신학과 신앙이 분리되지 않고, 신학하는대로 신앙하는 이들의 삶에 큰 울림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평생 빈민들 속에서 살아오면서, 신앙과 실천이 어우러진 ‘통전적 선교’를 주창한 노학자 레네 파달랴(82) 박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교외 연구실을 찾은 한국의 목사 후보생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전했다.
“하나님은 사랑에 대해 얘기만 하는 것을 원치않아요. 하나님은 사랑을 살기를 원하지요. 행동을 통해 그 사랑을 보여주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