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의 노래
좌·우 아우른 독립운동사 생생
강만길 | 역사학자
▲ 아리랑의 노래 | 김산·님 웨일즈
5000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이면서 20세기에 들어와서 타민족의 강제지배를 받게 되는 경우는 세계사에서도 드문 일이라 하겠다. 그렇게 ‘식민지 백성’이 된 사람들이 지배기간에 각기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문제는 역사학의 관심거리가 되고, 따라서 연구대상이 되게 마련이었다. ‘왜정 36년’ 동안을 산 사람들의 상황을 여러 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그 기간에 김산 즉 장지락같이 산 사람도 있었음을 <아리랑의 노래>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의 경우 역사학 전공자로서 <아리랑의 노래>를 통해 얻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추진된 우리 독립운동전선에는 좌익진영도 있고 우익진영도 있었지만, 이 두 진영이 민족해방이 가깝게 전망되면 될수록 합작해 갔다는 사실을 <아리랑의 노래>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왠지 우리말 번역본 <아리랑의 노래>에는 빠졌던데 일본어 번역본에는 김산이 직접 쓴 ‘조선혁명운동의 분석’이란 부록이 있고, 거기에 1936년 이후의 우리 민족 독립운동전선은 모든 계급과 당파가 통일해서 추진한 ‘민족전선’으로 되어갔다고 기록돼 있다.
분단시대의 민족운동사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까지도 좌익운동과 우익운동으로 분열시킨 경향이 있는데 <아리랑의 노래>를 읽음으로써 독립운동과정의 통일전선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논증하기 시작했다.
해방 후 남북으로 분단되는 두개의 국가가 생기리라고는 그야말로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독립운동전선이었기에, 해방이 가깝게 전망되면 될수록 모든 정파가 통일전선을 이루어갔음을 알고 논증하게 된 것은 <아리랑의 노래>를 읽음으로써 가능했다. 따라서 1940년대로 들어서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좌우합작정부가 된 사실과 국내외 독립운동단체들이 통일전선을 지향해 간 역사를 쓸 수 있게 되었다. [2014. 2.27 <경향신문> 1면]
역사를 위한 변명
‘역사학의 길’이란 이런 것
▲ 역사를 위한 변명 | 마르크 블로흐
“도대체 역사란 무엇에 쓰는 것인지 말해주세요”로 시작되는 프랑스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흐의 미완성 저서다. 제1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한 바 있는 소르본대학의 교수이던 그는 1939년에 독일과의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군에 입대했고, 프랑스가 독일 점령 아래 들어가자 레지스탕스에 투신해 싸우다가 체포되어 1944년 독일 나치에 의해 총살당했음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학자로서 그의 경력도 특이하지만, 인간학으로서의 역사학을 강조하는 그의 역사에 대한 이해도 뒷사람들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그는 “역사는 과거를 연구하는 죽은 학문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 도움을 주는 유용하고도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했다. 과거사를 알기 위한 역사 연구나 학습에 그쳐서는 안되며, 인간세상의 오늘과 내일을 보다 낫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연구요, 학습이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라 하겠다.
역사학에 대한 그의 정의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역사학 전공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준 점이라 하겠다. 그는 역사에 비추어 옳지 않은 일과는 목숨을 걸더라도 타협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실천으로 보여준 것이다. 모든 인간이 정치적으로 한층 더 자유로워지고 경제적으로 한층 더 고루 풍요로워지며 사회적으로 한층 더 평등해지고 사상적으로 한층 더 자유로워지는 ‘역사의 길’을 막는 세력과는 결코 타협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그는 가르치고, 또 실천했다. <역사를 위한 변명>은 그런 정신이 잘 담긴 저서라 할 수 있다.
무작한 외세의 강제지배 아래 살고도 해방 후에는 또 문민독재와 군사독재 아래 살게 되면서 옳은 역사의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봤다면, 그리고 마르크 블로흐의 삶과 죽음을 알고 <역사를 위한 변명>에 접해본 경우라면, 역사란 것이 무엇이며 삶이란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한층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2014.2.28 <경향신문> 1면]
그밖에.
▲ 조선봉건사회경제사/백남운(식민사학 극복의 디딤돌) ▲ 역사란 무엇인가E.H. 카(역사, 이상의 현실화 과정) ▲ 한국통사-박은식(근.현대사 연구 길잡이)
내 인생의 책
조영남 | 가수
아웃사이더
딴짓 또 딴짓… 나도 아웃사이더
▲ 아웃사이더 | 콜린 윌슨
대학 시절 영국 출신의 젊은 비평가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를 만났다. 약관 24살이라는 나이에 쓴 이 책은 그를 단박에 최고의 저술가로 올려놓는다. ‘아웃사이더’는 말 그대로 밖에서 서성대는 사람들, 즉 열외자라는 뜻이다. 신은 죽었고 더 이상 신의 능력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니체의 실존철학 틀에서 나온 책이다. 콜린 윌슨이 지칭하는 ‘아웃사이더’는 참으로 방대하다. 지금까지 세상에 나타난 위대한 사람들, 니체를 비롯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고흐, 니진스키, 사르트르 등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의 사상과 철학을 아웃사이더적 입장에서 일목요연하게 파고든다.
나는 노래를 불러 먹고사는 사람이다. 노래를 직업적으로 부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노래를 타인들로 하여금 돈을 지불하고 듣게 만들어야 하니 그게 좀 어려운 일이겠는가. 게다가 나는 노래를 부르는 일에 좀 여유가 생겨 현대미술에까지 손을 댔다. 이쪽은 더욱 치열하다. 나는 그림을 그린다는 일이 치열함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아웃사이더>를 통해 터득했다. 누가 그림 그리라고 재촉하는 것도 아니고 가수로 먹고살 만도 한데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는 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콜린 윌슨의 이론대로라면 ‘아웃사이더’는 자신이 왜 아웃사이더인지 모른다. 아웃사이더를 다룬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도 기억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별 이유도 없이 빈둥대면서 그림이랍시고 그려대는 것이다.
인간은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조건 속에서도 완전한 자유를 꿈꾼다. 내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자유이고 내가 살기 싫어 스스로 숨쉬기를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역시 자유다. 어차피 세상과 현실은 역겨운 장소다. 출구도 없고 지표도 없다. 나 혼자 딴짓을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나는 콜린 윌슨이 말하는 ‘아웃사이더’다. [2014.3.3. <경향신문> 1면]
보들레르
저항정신 불어넣어준 시인
▲ 보들레르 | 김붕구
불문학자 김붕구가 썼던 평전 <보들레르>를 보자마자 보들레르에 푹 빠졌다. 젊은 시절 만났던 그는 세계에서 가장 멋지고 파격적인 시인이었다. 그 때문에 그에 대한 호기심이 크게 일었고 맹목적으로 그를 연구했다. 이후 보들레르에 대한 책들을 많이 접했지만 김붕구 교수가 썼던 책이야말로 기념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평전들을 웬만큼 찾아봤지만 이 책만한 것을 찾기 힘들었다. 김붕구는 자신이 마치 보들레르가 된 듯 보들레르를 분석했다.
보들레르부터 랭보, 베를렌 등 나는 시와 시인에 대해 특히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것은 내가 가수인 것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가수는 시에 가락을 넣어서 부르는 사람이다. 노래의 리듬감과 시의 리듬감이 통하고, 그러다 보니 시어가 갖는 생략되고 응축된 의미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김붕구는 한국전쟁 속에서 보들레르를 만났다고 책에 썼다. 그 역시 보들레르를 만났을 때 이 특이한 이방의 방문자에게 큰 매력을 느끼고 자신이 전쟁통에서 살아남기만 한다면 보들레르의 시혼을 마음껏 캐보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보들레르는 스스로를 저주받은 시인, 지구로 유배된 시인, 파리에서 가장 우울한 시인으로 불렀다. 지상권세의 명으로 이 지겨운 세상에 태어났다고도 했다. 그의 이런 표현들을 보면 그는 나르시시스트이자 자기중심적이었고 세상에 대해 굉장한 배짱을 갖고 있었다. 그런 보들레르는 나에게 무모한 저항정신을 줬다. 나는 신에게 항의하고 정면대결하는 것을 그를 통해 배웠다. <예수의 샅바를 잡다>도 그래서 쓰게 됐다. 모든 것과 대결하고 붙어보겠다는 마음, 그런 보들레르 정신은 지금까지 겁 없고 자유롭게 살아온 내 삶의 동력이 돼왔다. [2014.3.4. <경향신문> 1면]
뜻으로 본 한국역사
‘기독교와 한국사’ 명쾌한 해석
▲ 뜻으로 본 한국역사 | 함석헌
나는 1974년 미국에 가서 신학공부를 했다. 신학적인 배경 지식을 공부해 성가를 잘 부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사실은 다른 생각도 있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왜 여러 종교 중에서 하필 기독교를 믿게 됐는지가 궁금해 그 연유를 파헤쳐 보고 싶었다. 당시 한국 분위기에서 불교, 유교, 기독교는 득세를 하는데 일제강점기에 그렇게 번창했던 단군교는 왜 그렇게 무시당하고 약화됐는지 등도 궁금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부모가 살았던 그 시대와 사회적 배경, 분위기를 알아야 했고 자연히 한국의 근대 역사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그렇게 접하게 됐다. 원제는 <기독교 입장에서 본 한국역사>였는데 선생이 뒷날 특정 종교를 내세우기보다는 그냥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고쳤다는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한국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고 설명한다. 우리 민족은 길거리에 버려진 걸레조각 같은 취급을 받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이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해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일에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심어주신다. 나는 선생의 역사인식이 정말 탁월하다고 느꼈다. 유일하게 한국인이 한국 마음으로 쓴 이 역사책은 나를 온통 지배했다. 이 책을 읽었을 당시 함석헌 선생을 꼭 뵙고 싶었다. 당시 미국에서 만났던 김동길 교수는 한국에 오면 소개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내가 귀국하기 전에 선생이 돌아가셨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을 통해 신학교에 들어갈 당시 가졌던 의문을 어느 정도 풀게 됐다. 내 부모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은 당시의 유행에 따랐던 것이다. 아마도 내 부모가 고려시대에 살았더라면 불교를, 조선시대에 살았더라면 유교를 받아들였을 텐데 그 당시에 기독교는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 중 일종의 최신 유행 수입제품이었던 것이다. [2014.3.5. <경향신문> 1면]
그밖에.
▲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 | 리처드 파인만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 조영남 저
길 위에서
나의 청춘을 뒤집어놓은 책
최백호 | 가수
▲ 길 위에서 | 잭 케루악
스물 두세살 때쯤, 내가 훗날 ‘영일만 친구’라고 노래했던, 시인이며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던 친구 홍수진이 무명가수인 나에게 ‘이거 당신 좋아할 거야’ 하며 책 한권을 던져 주었다. 잭 케루악이라는 미국 작가가 쓴, 책장이 떨어져 나간 낡은 라는 책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마법처럼 그 책에 빠져들었고 거기에 나오는 음악들, 미국 도시들의 풍광, 그리고 미제 자동차의 이름까지도 달달 외워 버렸다. 그 책이 그렇게 낡아 버렸던 건, 금서(禁書)여서 은밀하게 손에서 손으로 옮겨 다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까지도 떨어져 나간 만큼 그 책의 시작과 결말을 알지 못했다.
<노상에서>는 ‘샐 파라다이스’라는 젊은 작가가 ‘딘 모리아티’라는 괴짜 친구와 자동차와 히치 하이킹으로 미국대륙을 여행하며 술과 마약, 여자들과 함께했던 내용으로 ‘비트’와 ‘히피’의 근원이 된 ‘잭 케루악’의 경험담이다. 당시 억눌리고 살벌했던 세상 분위기 속에서 탈출구가 필요했던 우리에게, ‘노상에서’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맘껏 자유를 누리는 미국의 젊은이들에 대한 부러움과 갈증은 이 후진국 청춘들을 몸부림치게 했다.
그 책을 만난 이후 나는 더 이상 지방의 무명가수로 머물 수가 없었다. 나의 열정은 끊임없이 터져 나와, 역마살을 자극했고, 어느 날 나는 무모하게도 기타만 달랑 들고 낯선 서울로 올라왔고 내 이름을 가진 가수가 될 수 있었다.
그 <노상에서>를 몇 년 전 우연히 <길 위에서>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났다. 거의 사십년 만에, 그날 밤, 그 책을 읽으며 나는 흥분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새삼 이 나이에 새롭고 멋진 여행의 꿈을 계획하고 있다. 정말이다. 머지않아 이 무의미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환희의 오아시스를 찾아 힘차게 달려갈 것이다. ‘샐 파라다이스’와 ‘딘 모리아티’처럼, 그리고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나의 ‘영일만 친구’처럼….[2014.3.10. <경향신문> 1면]
라이파이
10살 무렵 빨려든 환상적 세계
▲ 라이파이 | 김산호
어릴 적 시골 고향에는 책방이 없었다. 책이 귀했다. 책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어쩌다 책 한권이 생기면 만사 제쳐두고 그날 다 읽어버렸다. 해저 2만리, 소공녀, 소공자 등 그 신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참 많은 꿈을 꾸었다. 초등 3학년 어느 날, 수업시간에 짝꿍 녀석이 선생님의 눈을 피해 읽고 있던 만화책을 뺏어보았는데 그 책은 내게 너무도 큰 충격을 주었다. <라이파이>. 태백산맥 깊은 곳에 사람 얼굴 형태의 바위로 위장된 요새에서 ‘제비양’이 조종하는 ‘제비호’라는 제트 비행기를 타고 악의 무리 ‘녹의 여왕’을 무찌르는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그 이야기들은, 나를 새로운 모험과 환상에 빠지게 했다. 그날 이후 나는 태백산맥 어딘가에 숨어 있을 ‘라이파이’씨를 만나는 계획으로 하루를 보내는가 하면, 누나들의 지리책을 뒤져 태백산맥을 연구하기도 했다.
만화 <라이파이>는 내 삶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그 시절, 그 책과 함께했던 시간들은 나의 성격 형성이나 행동거지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세상을 만화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능력. 그 행복한 능력은, 나에게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게 한다. 만화가 발달했던 나라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강대국이 되어 있다. 미국이나 일본이 그 예다. 만화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할리우드를 만들었고, 첨단의 자동차를 만들었고, 우주선을 만들고 있다. 근래 서울시내 어딘가에 ‘재미로(路)’라는 만화의 길을 만든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누구의 생각인지 모르지만 그는 아마도 만화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일 거다. 만화는 ‘재미’로 접근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만화는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을 가르치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혹시 우리나라, <라이파이>를 보지 않았던 아이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게 아닐까? [2014.3.11. <경향신문> 1면]
너에게 미치도록 걷다
외로운 친구 같은 부처
▲ 너에게 미치도록 걷다 | 박인식
나는 무신론자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 신을 만난 적이 한번도 없고 설혹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기대어 살고 싶지는 않다. 그냥 지금까지 내게 주어진, 가진 것들만으로도 충분하다. 충분히 행복하다. 그 행복은 친구인 작가 박인식의 <너에게 미치도록 걷다>를 읽고는 더욱 견고해진다.
‘부처가 죽었다. 제자들이 구슬피 울었다. 어미 잃은 새들 같았다. 그러자 죽은 부처는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밀어 보였다. 맨발이었다’라고 시작되는 이 책은 여기까지만 읽으면 된다. 이미 결론을 첫머리에 제시해놨기 때문에. 더 읽을 필요가 없다. 다만 작가가 부처와 함께 걸었던 멀고도 험한 고행 이야기들은 책을 거기서 덮을 수 없게 만든다.
책을 들고 낄낄거리게 만드는 네팔의 ‘카트만두 공항’ 이야기나, 중간중간 등장하는 여인들과의 묘하고 달콤한 사건들은 딱딱하고 지루할 수도 있는 주제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 책에서 부처님이 엄청난 초능력의 존재가 아님을 밝혀낸다. 우리가 아무리 절에 가서 빌고 빌어도 부처님께서는 속세의 일들에 관심이 없으심을 깨우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인간적인 부처의 모습에서 연민을 느꼈고 그 사람과 친해지게 되었다. 밤새도록 술을 나누며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그런 외롭고 따뜻한 친구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 무신론자다. 앞으로도 특별한 사건이나 어떤 신비한 현상을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을 거다. 간혹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혹시, 우리 인간이 신(神)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 너무 멀리서 신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부처도 예수도 마호메트도 인간에서 시작을 했으니. 이 시대의 인류는 이제 거의 신의 경지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2014.3.14. <경향신문> 1면]
그밖에
▲ 재즈 싱잉의 비밀 | 말로 ▲ 파이브 스타 스토리스 | 마모루 나가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