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7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글쓴이 정현진 기자 | regina@catholicnews.co.kr
“복음화는 개인 취향 따르는 사적 영역 아니다”
<복음의 기쁨>과 한국교회 심포지엄에서 박동호 신부, 교황의 사회론 밝혀
▲ 박동호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1주년 기념 심포지엄 ‘<복음의 기쁨>과 한국교회’ 두 번째 발제를 맡은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신정동성당 주임)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3장과 4장을 중심으로 ‘사회적 영성’에 대해 발표했다.
박동호 신부는 <복음의 기쁨>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의 회복을 열망하는 것이며, 문자화를 넘어 정신의 회복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토록 교황 권고가 환영을 받는 것은 여전히 한국 교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복음의 기쁨>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과 <사목헌장>의 정신을 충실히 잇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로부터 세상 속 교회의 사명을 찾고 있다. 교회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쇄신함으로써 새로운 길로 나가자고 독려한다”고 말했다.
박동호 신부는 교회의 사명인 복음화를 ‘선교’의 재개념화와 연결시켰다. 복음화는 “기쁜 소식을 인내를 갖고 끊임없이 선포하고 하느님의 구원에 협력하는 모든 활동”이며, 선교는 ‘신자 배가 운동’, ‘복음화율’과 연결되는 양적 의미가 아니라, “세례를 포함해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에서 다루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선교 사명은 곧 복음화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박 신부는 “교회는 인류를 일치시키고 하느님과 결합을 이루는 표지이자 도구이며,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하느님이 선택한 백성”이라고 정의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삶을 꾸려가는 하느님 백성 모두는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 제자들’이라는 점에서 제자와 선교사가 분리되지 않으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곧 ‘선교하는 제자들’”이라고 말했다.
박동호 신부는 선교, 복음화를 양적 개념이나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환원시키면 “복음화는 결국 개인의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된다. 무엇보다 하느님 구원의 보편성 혹은 공동체성에 대한 외면을 정당화시켜, 교회의 본성과 사명 자체를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교회와 세상을 분리시킨다”고 우려했다.
“복음화는 하느님 나라를 우리 세상에 현존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화의 풍부하고 복잡하고 역동적인 참모습을 부분적으로나 단편적으로 규정하려 하는 것은 복음화의 의미를 빈약하게 하고 나아가 왜곡할 위험이 있습니다.’” (<복음의 기쁨> 176항)
두 번째로 박 신부는 <복음의 기쁨>이 각 지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고 분석하고, 행동지침을 제시해야 한다는 권고와 함께 가장 근본적이고 심각한 두 가지 문제를 성찰하고 분석하며, 행동 지침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그 두 가지 문제는 ‘사회적 약자의 통합’과 ‘사회적 대화를 통한 평화’이며, 전자는 경제적 문제, 후자는 평화의 문제라고 전했다.
박동호 신부는 우선 사회적 약자의 통합에 대해 “경제와 사회 정의에서 사회적 약자의 탄원을 하느님과 함께 듣고, 연대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할 신앙행위”라고 규정하고, “연대는 재산의 사회적 기능과 재화의 보편 목적이 사유재산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의 자발적 반응”이라고 말했다.
이어 <복음의 기쁨>은 빈곤 문제를 ‘구조적 원인을 갖는 사회적 질병’이며, 시급한 문제에 대응하려는 사회복지사업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진단하며, 현재 경제 모델은 빈곤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면서, “시장과 금융 투기의 절대 자율 배척과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 제거”를 그 행동 지침으로 제시한다.
“평화는 사회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지배함으로써 이룬 분쟁 제거나 단순한 폭력의 부재가 아니다. 평화는 가난한 사람을 달래거나 침묵하게 하는, 그래서 부유한 사람들의 만족스러운 생활양식을 떠받쳐주고, 대신에 다른 이들은 그렇게 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하는, 그런 사회구조를 정당화시키는 구실이 될 수 없다. 평화는 무력의 불안한 균형으로 전쟁을 피하는 것도 아니다. 평화는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 증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 인간 사이에 보다 완전한 정의를 갖춘 그런 질서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매일 노력함으로써 꼴을 갖춰가는 것, 곧 통합적 발전의 결과다.”
박동호 신부는 “책임 있는 시민이 된다는 것은 평화, 정의, 그리고 형제 의식에서 한 백성이 되려는 계속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과정은 가톨릭 사회교리의 네 기둥, 즉 인간 존엄성, 공동선, 보조성, 연대성의 원리들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 신부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복음의 기쁨>을 통해 “교회 쇄신, 사목 쇄신, 복음화 사명의 쇄신과 거대한 전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전환을 열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만인의 얼굴에서 하느님 얼굴 발견하는 복음 선포자”
<복음의 기쁨>과 한국교회 심포지엄에서 한상봉 국장, 복음선포자의 영성 밝혀
심포지엄 ‘<복음의 기쁨>과 한국교회’ 마지막 발제를 맡은 한상봉 편집국장(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은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5장의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 선포자’를 중심으로 해설을 이어갔다.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 선포자는 두려움 없이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열어 젖히는 복음 선포자입니다.” (<복음의 기쁨> 259항)
▲ 한상봉 편집국장
한상봉 국장은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 선포자가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 사랑의 체험이며, 하느님에 대한 절실한 사랑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국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복음 선포가 단지 개인적 성향과 바람을 억누르고 의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불이 우리 마음속에 타올라야 이뤄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서, 마지못해 하는 선교가 아니라, 성령에 사로잡힌 ‘예언자처럼’ 움직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가 성령의 힘에 사로잡혀 ‘세상을 위한 구원의 성사’가 되기로 작심하고,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맛보기 위해 변신을 시도한 가장 탁월한 역사적 사건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이며, <복음의 기쁨>은 요한 23세의 성령에 의한 교회개혁 의지를 계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상봉 국장은 이미 50년 전에 이뤄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복음의 기쁨>이 내포한 의미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만큼 한국 교회는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그러나 한편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 이전에 이미 새로운 전환을 시도하고 있었다. 2009년 용산참사 이후, 강정, 밀양, 대한문 거리 미사 등이 이뤄지는 가운데, 교황의 선출은 불더미 속에 기름을 부은 듯 우리를 ‘삶의 현장’으로 나가도록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가, 무엇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선포할 것인가?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영성이 없는 사회적, 또는 사목적 담론과 관행들은 복음화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복음의 기쁨> 262항)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도하며 일하는 복음 선포자의 영성, 예수와의 인격적 만남과 예수에 대한 사랑이라는 복음 선포의 원천 그리고 세상 속에서 고통 받는 하느님 백성과 맺는 연대라는 복음 선포의 장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한상봉 국장은 교황 프란치스코가 복음 선포자들에게 ‘기도와 사회적 사랑의 통합’을 권고하고 있으며, 기도란 ‘개인주의적 영성’을 넘는 보편적 사랑을 담는 기도, 개인과 세상 사이에 놓인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고백하는 기도라고 말했다.
한 국장은 이런 맥락에서 “한국 교회에서 만사 만인의 얼굴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발견하는 복음 선포자,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고, 그 하느님이 사랑하는 백성의 고통을 나눠 가지려는 열정이 있는가 묻고 싶다”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앞서 간 성인들에게서 배우자고 촉구했지만 ‘그들은 성인이니까’라고 변명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앙의 목적이 ‘성인됨’에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면, 그 신앙은 충실성을 의심받는 신앙이며, 우상숭배의 가톨릭적 변주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상봉 국장은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과 사랑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확신을 강조했다. 그는 “그리스도와 맺는 우정, 그분의 메시지를 새롭게 맛보는 ‘개인적 체험’을 통한 확신이 없다면, 복음 선포 활동을 열정적이고 지속적으로 행할 수 없다는 것이 교황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 “개인적 체험을 통해 예수를 알고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개인적 삶을 전혀 다르게 변모시킨다”면서 “예수를 알고, 함께 걷고, 말씀을 듣고 경배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삶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개인적 체험을 통해 확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분의 모범에 따라 우리도 사회 속에 깊이 들어가, 모든 이와 삶을 나누고, 그들의 관심사에 귀 기울이고, 물심양면으로 필요한 것을 도와주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어주고자 합니다. 또한 우리는 다른 이들과 서로 손잡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고자 노력합니다.” (<복음의 기쁨> 269항)
한상봉 국장은 “우리는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하느님에 대해 새로운 것을 배운다”고 이르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기꺼이 세상에 내주려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우리의 헌신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한 국장은 “교황은 복음 선포자의 유일한 희망의 원천이 그리스도임을 재차 확인시킨다. 중요한 것은 업적이 아니라 그분의 길을 충실히 걷는지 묻는 것”이라면서, “성공의 다른 말인 ‘희망’ 없이 사랑한다는 것, 사랑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신앙이 곧 성령께 의탁하는 삶”이라고 말했다.
또 ‘기도’와 ‘전구’의 힘을 강조하고, “복음 선포자가 기도와 전구에서 얻는 것은 나와 타인의 삶을 응시하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에 늘 동반한다는 자각이다. 이 자각이 아니면 자신의 고통스런 과제에 충실하면서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는 기쁨을 얻을 수 없다”며 “복음 선포자는 기도 안에서 그분을 만나고 일치를 경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