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7일 <한겨레>
글쓴이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두 과학자의 자살
모든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지만, 사람들이 자살을 택하는 것은 그 사회와 정치의 병리 때문이다. 숭례문 복원에 사용된 나무가 국내산인지 검증하는 일을 맡았던 목재연륜 분야 국내 최고의 권위자 박아무개 교수의 자살과 2008년 당시 광우병 위험을 알렸던 수의사 박상표의 자살이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이들이 왜 자살이라는 길을 택했는지 아직 잘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 남달리 깊은 전문적 지식과 강한 소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잘 알려져 있으며, 박 교수의 경우 죽기 전에 두 번이나 경찰 수사까지 받는 등 이 일로 강한 외부의 압력을 받은 의혹이 있다.
나는 이 두 사람 모두 자연과학도라는 점을 주목한다. 자연과학 전공자들은 인문사회과학도들에 비해 통상 덜 ‘정치적’이며, 정치에도 관심이 덜하고, 세상을 단순하고 순수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의학·법학 등 기술적 지식을 다루는 사람도 그렇다. 또 그래야 한다. 과학자나 기술자는 자신의 전문성으로 생계를 도모하며, 그 전문성이 자신의 자존심과 삶의 근거이자 보람이다. 이들에게 자신의 소신과 판단을 포기하고 권력의 요구에 복종하라는 말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기술자들의 합리적 의문과 판단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들의 소신이 권력과 자본의 논리에 굴절되지 않도록 충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하며, 이들 역시 돈과 자존심을 맞바꿔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정치사회적으로 극히 민감한 사안에 대한 법, 의학, 물리학, 각종 공학 전공자들의 정당한 의문이나 판단을 경청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소신을 고집하면서 사회에 경고를 보내는 전문가들을 조직 부적응자로 몰아가거나 최근에는 종북이라는 딱지까지 붙인다. 황우석 사태 이후 4대강, 삼성 백혈병 사고, 천안함 사고, 원전 사고 등 과학기술자들의 전문성과 판단이 필요한 일이 계속 발생했는데, 그 사안의 진실을 잘 알고 있을 전문가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 천안함 침몰 건에 대해서도 국내 모든 물리학자들은 침묵하였으나, 오직 미국에서 활동하는 두 전문가만이 의문을 제기했고, 이 일로 당사자들은 입국 때 당국의 감시를 받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전문가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거나 소신대로 발언하면 아직도 해고, 불이익, 따돌림을 당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소신 있는 전문가들의 입을 틀어막거나 자리에서 추방하였고, 그 대신 충성을 바치는 거짓 전문가들에게 출세의 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래서 사이비 과학자·검찰·공무원·의사·교수들이 설치는 대신,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전문가들이 정부나 대기업의 허위 보고서를 보고도 침묵하거나, 양심의 갈등을 못 이겨 자살까지 하는 사회. 사이비 전문가들이 영혼을 팔아 출세하는 사회는 이미 기둥이 썩어가는 집과 같다. 전문가들의 뭉개진 자존심은 곧 부메랑이 되어 사회로 돌아온다. 큰 상을 받아 마땅한 보석 같은 존재들이, 반대로 고뇌하다 죽음을 택하게 되는 현실은 이 사회의 건강성과 도덕성이 막장에 달했음을 의미한다.
박 교수의 자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한다. 그리고 전문가가 소신을 표현하고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학회나 협회 등 전문가 집단은 구성원을 보호할 수 있는 도덕적 힘을 갖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