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라도닷컴] 2007년 6월호에서 펌.
2. 글과 사진: 김창헌 기자.
지난 5월 16일 참가자들이 순창에서 담양으로 걸어가고 있다. (김창헌 기자)
반전평화 추모비석 수레 끄는 스톤워크 코리아 2007
고갯길을 만났다. 한 사람이 외친다. ‘반전’. 나머지 사람들이 받는다. ‘평화’.‘반전’ ‘평화’ '반전‘ ’평화‘…. 그렇게 고갯길을 넘었다. 수레를 끌며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수레에는 1톤 무게의 돌이 실려 있다. ‘UNKNOWN CIVILIAN KILLED IN WAR’(전쟁에서 숨진 무명 시민들)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추모비다.“전쟁피해자를 추모하며 평화의 길을 걷는다”. 국제반전평화순례 ‘스톤워크 코리아 2007(StoneWalk Korea 2007)’의 무거운 발걸음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월16일 순창에서 이들을 만났다. 담양으로, 광주로, 전쟁의 상처인 판문점으로 발길을 하고 있었다.
일본에선 미국사람들이 나가사키에서 히로시마까지 걸으며 원폭희생자 추모
지난 4월29일 부산을 출발, 김해 밀양 합천 지리산 남원을 거쳐 순창으로 왔다. 5월18일 광주, 5월30일 평택, 6월10일 서울, 6월15일 판문점까지 역사적인 날에 맞춰 평화를 위한 발걸음을 이어간다. 판문점에서는 끌고 온 추모비를 세운다. ‘돌’은 전쟁으로 인해 죽은 모든 이들에 대한 추모다. 참여자들은 하루 순례를 시작하며, 끝마치며 그 돌에 손을 얹고 전쟁에 희생된 사람들의 혼을 위로하는 묵념을 한다. ‘걸음’은 평화를 위한 연대다. 각 지역을 돌며 그 지역의 시민·종교단체 등과 연대한다. 그 지역 시민들과 함께 수레를 끈다. 벗이 돼 평화운동을 펼친다.
이번에 한국에서 열리는 ‘스톤 워크’는 여섯 번째 행사다. 스톤워크는 1999년 미국 평화단체인 피스아비(Peace Abby : 평화를 위한 수도의 집)와 피스풀투머로우즈(Peaceful Tomorrows : 9·11사태 희생자들의 유족모임)에 의해 시작됐다. 영국 아일랜드 일본 등지에서 5차례 진행됐다. 2005년 일본에서 진행된 ‘스톤워크 재팬’은 원폭투하 60주년을 맞아 미국 사람들이 일본으로 와서 원폭 희생자를 비롯한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를 추모했다. 원폭투하가 있었던 나가사키에서 히로시마까지 600㎞를 수레에 추모비를 싣고 걸었다. 히로시마에 추모비를 세웠다.
이번 스톤워크 코리아는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의해 희생당한 이들에게 사죄하고, 한국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 사람들을 죽인 과거에 대해 반성하는 의미. 한 걸음 한 걸음에 사죄와 추도의 의미를 담아 우호와 평화를 기원한다. 한국이 오기에 앞서 일본 스톤워크 실행단은 일본 후쿠오카현 이이츠카시의 무궁화당에서 키타규슈 오다야마 묘지까지 행진했다. 일본 시민들의 ‘사죄하는 마음’을 모으기 위한 것. 무궁화당은 치쿠호 탄광에 강제 연행돼 죽은 조선인 108명을 추모하는 곳이며 오다야마 묘지는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고국으로 돌아가다 태풍으로 조난 당해 죽은 조선인 80여 명의 넋이 안치된 곳이다. 스톤워크는 무거운 돌을 한 사람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듯이 평화운동도 여러 나라 시민들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강제징용 부모님 유골 갖고 참가한 재일교포 조소환씨 “평화의 돌 북한에도 들어갔으면”
순창에서 만난 평화순례에는 일본인 14명이 수레를 끌고 합천자연학교 아이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순창농민회 순창여성농민회 순창농협노동조합 등으로 구성된 ‘순창민주연대’ 회원들도 힘을 보탰다.이토칸지(신니테츠 전 징용공문제를 추궁하는 모임 회원)씨는 “미안합니다”라는 말부터 건넨다. 한국사람 만나면 가장 먼저 건네는 그의 첫인사이다. “일본 한국 침략했습니다. 사죄합니다. 이제 우호합시다”라고 말을 건넨다. 그는 “일본 정부가 사죄하지 않아 우리가 조선반도에 왔습니다. 일본 정부는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한 사람이 열 사람에게 평화를 알리고 열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평화를 알려 모든 사람이 원하는 평화를 만듭시다. 노력합시다”라고 말한다.
이번 행진에는 합천자연학교 아이들이 함께 했다. "어린이들이 큰 힘이 된다". (김창헌 기자)
야마구치에서 온 쿠와노 야스오(59)씨는 “오르막길을 오를 때 스톤워크의 힘을 믿었다”고 말한다. “작은 아이들의 힘이 오르막길 오를 때 가장 큰 힘이 된다. 마음으로 교류하면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는 길 건너로 보이는 골프장을 보며 “한국에도 골프장 많냐” 물으며 “환경 파괴다. 이것도 같이 막아내자”고 제안한다. 담양에 접어들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재일교포 조소환 스님이 비옷을 챙겨주고 있다. 그는 이번 행사에 부모님의 유골을 가슴에 품고 참여했다. 부모님 고향에 유골을 뿌렸다.
나가사키에서 온 요시다 무츠코는 “내가 사는 나가사키는 원폭지역이라 평화에 대한 인식이 높다. (참여자가) 불과 몇 명이지만 사죄의 마음을 담아 걸어간다는 것이 가슴 찡하고 이렇게 한두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사죄하면 알아주리라는 희망을 갖고 참여하게 됐다”고 말한다.이번 스톤워크에는 재일교포 1·2세대로 참여했다. 재일교포 1세대 조소환(74) 스님이 스톤워크에 참여한 사연은 가슴이 애린다. 조 스님은 부모님이 일본으로 강제징용 돼 갈 때 어머니 뱃속에 있었다. 그가 이번 스톤워크에 참가 한국에 오며 가슴에 품고 온 것은 부모님의 유골. “부모님 고향이 경남 밀양이다. 내가 사용하는 말도 밀양말이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유골을 집에 두고 있었다. 이번에 부모님 유골을 가지고 한국에 왔다. 일부는 부모님이 일본에 건너왔던 대한민국 바다에 뿌렸고 일부는 부모님 고향인 밀양에 묻었다.”
스톤워크가 밀양을 찾은 지난 5월2일, 그는 74년 만에 부모님의 고향을 찾았다. 부모님이 살았던 옛집도 찾아갔다. 고향집 앞에서 큰절을 했다.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집에 오게 되어 부모님과 고국의 은혜에 감사한다”고 울었다.그는 “일본은 60년 넘게 차별을 계속하고 있다. 교토 20만 명의 교포들은 모두 고독한 사람들이다”고 일본 정부의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을 비난했다. ‘통일’을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통일을 해야 한다. 이 조그마한 돌(추모비)이 통일의 원동력이 되면 좋겠다. 얽힌 실 하나씩 풀어내야 한다. 평화의 돌 북한에도 들어가고 미국에도 들어가 평화통일 해야 한다. 판문점까지 (추모비를) 꼭 끌고 가겠다.” 그는 이번 순례를 마치고 홀로 탁발을 하면서 동해안을 따라 걸을 생각이다. 고국의 아름다움을 맘껏 알아갈 생각이다.
반전평화순례 하루 일정을 마치고 참가자들이 추모비에 손을 얹고 묵념을 하고 있다. (김창헌 기자)
한국사람들도 이라크전·베트남전으로 희생된 사람들에게 사죄해야
순창에서 담양을 넘어서며 빗줄기가 뿌렸다. 비 맞고 땀에 젖고, 행진하며 감기에 걸린 사람이 여럿이다. 모두 익숙하게 비옷을 챙겨 입고 묵묵히 발걸음을 뗀다. 다시 ‘반전’ ‘평화’ ‘반전’ ‘평화’를 외친다.순창농민회 김정룡(36)씨는 “일본 사회가 급격히 우경화되고 평화헌법이 변경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 분들이 역사를 반성하며 사죄하며 걷는 일에 감사할 따름이다. 군사적인 전쟁뿐만 아니라 FTA WTO 등 세계화를 앞세운 제국주의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이 걸음이 전쟁 제국주의 몰아내는 발걸음이 됐으면 한다”고 말한다.
스톤워크 코리아 대회장인 최정의팔 목사(60·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은 “추모비는 단순한 돌이 아닌 한일 우호 기폭제가 되고 평화적 통일의 기폭제가 돼야 한다. 또한 한국도 이라크 자이툰을 파견하면서 이라크의 많은 민중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그리고 과거 베트남전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이번 순례 한국 사람들 역시 스스로 반성하며 아시아 평화에 앞장서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라고 말한다. 스톤워크 코리아 2007 한국실행위원회는 희망하고 있다. 미국 일본 한국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베트남, 한·미·일 시민이 함께 하는 ‘스톤워크 베트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