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7년 4월10일자에서 펌.
[책읽기 365] 막스 피카르 ‘침묵의 세계’- 김정란(시인/상지대 교수)
현대인에게는 돌아가야 할 고향이 없다. 아니, 있다. 지리적 고향은 없을지라도 더 크고 더 깊고 그윽한 고향이 있다. 침묵이라는 신성한 고향. 막스 피카르는 ‘침묵의 세계’(최승자 옮김·까치)를 통해 도시의 번잡함 안에서 침묵이라는 고향으로의 귀향을 꿈꾼다. 그 꿈꾸기는 행복한 꿈꾸기는 아니다. 그러나 치열하고 근원적인 꿈꾸기. 대한민국이라는 진실이 실종된 사회, 거짓이 진실의 탈을 쓰고 나대는 사회에서 그 꿈꾸기는 더욱 애절하게 느껴진다.
막스 피카르가 얘기하는 침묵은 ‘말 없음’이 아니다. ‘없는 말’로서의 침묵은 오히려 악마적이며 동물적이다. 인간은 여전히 말을 하기 때문에 인간이다. 그가 말하는 침묵은 말과 함께 있는 침묵이다. 말을 진실하게 만들어주는 침묵. 모든 말을 그 탄생의 근원으로 데려다 주는 침묵. 말이 침묵과 함께 있지 않을 때, 그 말은 혼자 태어났다 혼자 스러진다.
피카르는 인간의 지평에서 만나게 되는 침묵의 리스트를 제시한다. 얼굴, 사랑, 농부, 시, 동물, 그리고 기도. 피카르가 동물의 침묵을 말하며 “동물은 인간을 위해 물건들만이 아니라 침묵을 지고 다녔다”라고 할 때, 나는 내 안의 침묵이 큰 소리로 통곡하는 것을 듣는다. 인간은 생에게 간절하게 다가갈 때, 침묵에 실려 있는 말을 할 수 있다. 피카르는 그것을 기도라고 말한다. “기도는 말들을 침묵 속으로 쏟아붓는다.
” 피카르에게 진정한 말은 침묵 속으로 연장되는 말이다. 깊은 침묵이 우리 안에 있다. 다만, 이 생은 너무 번잡하여 우리가 그것을 잊고 있을 뿐. 돌아갈 침묵이 있으므로 우리는 불행 안에서 생의 번잡함을 견딘다. 꾹꾹 견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