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터넽 카페 [한국사회와 문화연구]에서 펌.
2. 글쓴이는 <구조주의>. 글 올린 날자는 2007년 3월 31일.
잠깐 도움말씀:
평소에도 <구조주의>의 글을 즐겨 읽는 편입니다. 그는 유명인도 아닌 순수한 아마튜어 논객이지요. 허나 균형 잡힌 시각이 일품인데다 세련된 지성이 돋보이는 글을 쓰는 분입니다. 마치 그의 필명처럼 말입니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민주사회와 풀뿌리들의 힘을 느끼면서 가슴 뿌듯해지는 까닭이 거기에 있기도 합니다.
최근 한미 FTA협상 타결소식을 접합니다. 이젠 남은 것이라곤 두 나라 국회의 비준절차라고 합니다. 두 나라 사이의 이른바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저 개인의 의견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또 지난 3년간 줄기찬 관심 속에서 관련기사나 논문이라면 가리지 않고 봐오기도 했고요. 그러나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왜 노무현 정부가 이리 서두르는지 특히 그 점이 혼란스럽더군요. 요컨대 이해득실 계산이나 이념적 지형에 따른 찬반은 비교적 쉽지 않나 생각합니다. 문제는 결국 우리가 나아갈 미래사회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철학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글은 본격적으로 경제나 지정학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문화적인 접근입니다만 그 점이 외레 경제를 되돌아보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되도록 무거운 주제를 피하려는 생각에서 올리지 말까 하고 몇번 망서리기도 했지만 한 시민이 고심하여 쓴 좋은 글이 아까워 싣습니다.
(머리부분 4개 문단 생략))
지난 한해 동안 전개되던 한미FTA가 진행되던 상황을 지켜보면서 떠나지 않던 생각이 있다. 그것은 현 정부의 FTA 전개과정이 황우석 사태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이다. 이 둘 사이에 무슨 유사성이 있는지 의아해 할 독자들도 있겠으나, 이 둘 사이에는 단지 닮은 점 뿐 아니라 아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다
황우석에 '감전'된 대통령, 김현종에 '감전'되다
2003년 12월 10일, 황우석 박사가 (기만으로 배양한) 줄기세포를 통해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그의 연구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술이 아니라 마술입니다. 동북아 시대, 2만 달러 시대의 가능성과 희망을 확실히 발견했습니다. …감동에 몸이 떨릴 만큼 감전됐습니다."
그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라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황우석 박사에 대한 정부지원은 그 전부터 있었지만, 대통령의 방문을 받은 황우석 박사는 곧 정부정책 자체가 되었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투자를 한 몸에 받았다.
새삼스레 과거 이야기를 들추어내어 대통령에게 망신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속고 있던 그때라도 대통령만은 신비스러운 힘을 발휘해 진실을 꿰뚫어 보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단 하나, 대통령도 판단착오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보통 사람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사기줄기세포에 '감전'된 것이 아니라 감전사고 이후 그가 보인 태도다. 대통령은 국민의 혈세를 쏟아붓게 한 자신의 판단착오에 대한 어떤 언급이나 해명도 한 일이 없다. 오히려 줄기세포 사기사건의 주역 가운데 한 명인 박기영을 다시 정보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임명했다.
여기서 대통령의 심각한 문제점을 본다. 그것은 자신의 판단이 그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 FTA가 한국 경제의 '업그레이드'를 가져와 '3만불'의 꿈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강변한다.
황우석의 줄기세포에 실수로 '감전'될 수 있다면 그가 지금 FTA에서 발견하는 '3만불의 꿈'이 주는 전율이 잘못된 판단에 기초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는 걸까? 그러나 황우석 박사의 조작이 드러나자 그에게 쏟아졌던 '선진한국의 미래의 주역' 자리는 고스란히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몫이 되었다. 한미FTA 추진에 대한 정부의 언급이 2005년 중반 이후 황우석 박사의 몰락과 시기를 같이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정부로서는 '새로운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믿었던 줄기세포 연구의 파행으로 인해 크게 당황했을 것이고, 이에 대한 대안을 찾기에 분주했을 것이다. 이때 2004년 7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된 이후 지속적으로 'FTA의 전도사' 노릇을 해온 김현종의 '경제업그레이드'론이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 틀림없다.
현 정부는 한미FTA를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다"고 주장하지만, 대통령이 FTA를 언급한 것이 2006년 1월 초이고, 이에 사전작업으로 스크린쿼터 축소를 전격적으로 발표한 것이 1월 말이므로 한미FTA가 얼마나 급박한 상황에서 결정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한미FTA 결정과 스크린쿼터 축소라는 어마어마한 사안을 한 사람의 판단에 맡길만큼 대통령은 김현종 교섭본부장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쏟았다.
"FTA 문제에 대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대통령 결심을 받으러 왔을 때 '이걸로(스크린쿼터 문제로) (미국이) 신뢰성 문제를 제기합니다, 어떻게 할까요'하길래 '약속해라' 이렇게(해서) 준 겁니다." "한미FTA 준비 충분히 했고 빠를수록 좋다." (2006년 8월 9일 특별회견에서)
정부 주도 발전모델의 붕괴를 가져올 FTA
지난해 3월 16일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놀라운 IT산업 발전을 다루면서 그 성공비결이 정부주도의 기술 및 표준개발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외국의 특허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부가가치 창출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인식한 한국정부와 기업이 상호협력하에 표준화된 기술을 개발해 왔고, 그 첫 시도가 와이브로(WiBro)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진단은 올해 영국 데모스(Demos)에서 발간된 보고서(South Korea: Mass Innovation Comes of Aage)의 내용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물론 이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이 나름의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뉴욕타임스>는 시티폰과 황우석 사태를 단점의 사례로 꼽았다), 현재까지 한국의 성장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라는 데에는 두 보고서 모두 한 목소리로 동의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정부가 표준개발과 보급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한다고 전한다. 정부 개입을 불만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미국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조차 정부의 정책개입과 협력이 미국 정부와 기업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인만큼 FTA하에서 이런 모델이 어떤 타격을 입을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이 모든 정부개입은 미국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소송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 이제까지 스스로 인식하지도 못한채 의지해 왔던 정부주도의 경제정책 전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FTA를 추진하는 당국은 'FTA를 하지 않으면 대안이 있느냐'고 항변하지만, 사실 이 질문에 답해야 할 사람은 본인들이다.
한국은 산업정책은 물론, 영화나 만화 등의 문화진흥과 수출기업포상, 그리고 심지어 고추장까지 포함되는 정부선정의 '월드베스트 상품'과 '깨끗한 화장실' 포상에 이르기까지 사회 곳곳에 정부가 나서지 않는 영역이 없다. 우리는 국가주도의 경제모델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충격을 주지 않으면 구조조정이 안된다"는 논리로 한미FTA를 합리화한다. 미국이라는 외부의 힘을 빌어 충격을 주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대적 개방의 충격이 어떤 것이 될지, 그리고 이에 대해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국민들에게 전해지는 소식은 없다. 그냥 대한민국 국민은 "위대한 국민"이니만큼 잘 견뎌낼 것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전 스크린 쿼터를 반대하는 영화인에게 "그렇게 자신이 없느냐"고 물은 바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질문을 받아야 할 사람은 대통령 본인이다.
"대통령, 미국의 힘이 아니면 내부개혁도 못할 만큼 그렇게 자신이 없습니까?"
당신의 명패를 국민에게 던지지 말라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정치적 모험으로 채운 것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국회의원 시절,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부산으로 내려갔던 것들부터 독재자를 향해 명패를 던진 것들, 이 모든 결단이 지금의 대통령을 있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FTA는 대통령 한 명의 삶을 건 모험이 아니라, 서민들의 삶을 건 도박일 뿐이다. 오히려 대통령은 FTA가 어떤 재앙적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여생을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민주국가로서의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는 국민들의 삶을 좌우할 제왕적 권력이 주어져 있지 않다.
'실패한 정권'이라는 대통령의 말에 옛 지지자 가운데 한 명으로 아픈 마음으로 동의한다. FTA를 그 실패를 만회하려는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했으리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실패'에도 정도가 있다. FTA는 실패의 만회가 아니라 가장 비참한 형태의 실패를 자청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대통령이 이제까지 모든 독재를 물리친 (그리고 지금 대통령을 지켜낸) 대한민국 국민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재임중 저지른 가장 큰 실수가 될 것이다.
독재자에게 명패를 던졌던 과거의 용기를 보여주지는 못할 망정, 그 명패를 국민들에게 던지지는 마시기 바란다. 하물며 국민들의 뜻을 무시하고 입을 막는 그 독재자의 모습을 닮기는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