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일동대문구 회기동에 있는 은혜공동체교회에서 강의 전 찬양을 하고 있는 모습>
아래의 글은 한겨레 인터넷 신문에 나온 글로서 요 며칠간 교계를 시끄럽게 했던 도올의 주장을
적당히 추려서 옮겨 보았습니다.
도올의 주장이 옳다, 그르다 감히 판단할 수 없지만 그의 주장 중 일부는 와 닿는 부분도 있고
또 일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한동안 시끄러웠던 도올의 주장, 무조건 욕만하고 반박만 할 것인가?
도데체 내용이 무엇이길래 그러는지 한번 알아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 도올은 ‘구약 폐기’를 주장했다.
구약성경은 유대인들의 민족신인 야훼(여호와)가 유대인들이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믿는 조건으로 애급의 식민에서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주겠다고 유대인 만을 대상으로 한 계약이며,
예수의 출현으로 새로운 계약(신약)이 성립된 만큼 구약은 당연히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구약은 초대 교회에서도 성경에서 떼어 내버리자는 말이 많았으나 초대교회가 제식의 측면에서
근거로 삼기위해 참고문헌으로 붙여놓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또 도올은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너희가 모세 율법을 믿느냐,
나를 믿느냐’는 물음을 한다”면서 “구약의 모세를 믿으려면 유대교로 가야하고,
우리나라에서 성황당을 믿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도올과 기자의 일문일답이다.
-한국교회언론회가 ‘도올 강의가 드라마처럼 성경을 구성했다고 주장한다’며
성경을 제자들이 창안해 기록한 것으로 설명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말씀이지 복음서 기자들의 서술이 아니다.
복음서 기자들의 목적은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신문기사는 물론 조선왕조실록에도 드라마적 요소가 있다.
그런 요소가 없다면 사복음서의 내레이션이 왜 모두 다른지를 설명해 보라.
공관복음서(마태오·마르코·루가복음서)엔 예수의 사역이 일년 밖에 안 되고,
예루살렘도 한번 밖에 안 가는 것으로 나오지만,
요한복음서엔 예루살렘에 수시로 가고, 3년 간의 사역이 나오지 않는가.
-그런 주장은 ‘성경엔 일자 일획의 오류도 있을 수 없다는 축자영감설과 성경무오류설’에
배치되지 않은가.
=그렇게 무오류를 주장하면서 한글 성경에서조차 틀린 데가 많다.
한자도 틀린 것이 적지않고, 예수의 족보도 세어보라. 한 대가 빠져 있다.
-한국교회언론회는 ‘도올의 강의에 영지주의적인 사상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영지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댄 브라운의 <다빈치코드>를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구질구질한 신화만으로 어떻게 기독교가 가진 세계적 권위를 파악할 수 있겠는가.
또 영지주의가 역사에 있었던 것처럼 얘기하지만 영지주의는 실체가 없었다.
그것이 ‘발전한 신학’에서 밝힌 바다. 그것은 헬레니즘이 발달한 당대 우주관이었을 뿐이다.
-한국교회언론회는 ‘강의 곳곳에서 신학적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누가 과연 오류를 범하는가. 기독교인들은 남을 비방하면 안 된다. 자신들의 신념만 종교고,
나머지는 이단이라면 거꾸로 보면 자신이 이단이 될 수 밖에 없다.
신앙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내면의 결단이다. 도올이 무슨 얘기를 하든 그 얘기로 신앙이
깨진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다.
-현재 기독교의 문제를 뭐로 보나.
=오직 성전건축에만 매달리는 거다. 건물엔 사람이 차야 은혜가 충만해진다.
사람보다 건물이 커서 썰렁하면 안 된다. 식당이 잘된다고 건물 크게 지은 식당 치고
안 망한 식당 별로 없다. 현재까지 교회 건물이 사람으로 꽉꽉 차는 곳은 세계에서 한국 밖에 없다.
한국 교회가 없었다면 세계 기독교 자체가 20세기에 별 볼일 없어질 뻔했다.
한국 기독교는 그만큼 위대하다. 그러나 지금은 젊은이들의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
이제 기독교인들이 깨어나서 다른 사람들을 포용해야 한다.
자신의 신앙만이 유일한 신앙이라는 독선에서도 벗어날 때가 되었다.
이제 민중들은 기만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신앙을 바르게 갖도록 도와야할 사람들이다.
건전한 상식을 자리잡게 하는게 내 강의의 목적이기도 하다.
-한국 기독교가 어떻게 단시일내에 세계가 놀랄만큼 빠르게 정착했다고 보는가.
=우리나라는 선교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기독교를 유입한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다. 儒學이 가진 공백을 인간 평등으로 메우고,
양반부터 상민까지 뿌리 박고 있던 샤머니즘을 기독교가 흡수했다.
기독교의 평등 사상은 위대하다. 또 우리 민족은 음주가무를 즐긴다.
노래방 봐라. 찬송가가 준 감동이 우리 민족을 기독교에 빨려들게 했다.
-세계에서 대표적인 다종교사회인 우리나라의 여러 종교를 직간접으로
섭렵한 도올이 권하는 한국 종교인의 자세는 무엇인가.
=자기 신앙은 내면에서 지키고, 다른 사람의 신앙에 대해선 관용하고,
모든 사물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일부 내용은 생략하였음)
또 3월4일 오후 2시 서울 회기동의 작은 상가건물에 세든 은혜공동체교회에서
100여명의 청년 신도가 모인 자리에서 박민수 담임목사는 <한겨레> 인터뷰를 보고
도올을 초청했다고 소개한 후 도올의 강의가 있었다고 합니다.(주요부분만 펌)
도올은 “신심이 깊었던 어머니가 생각나고, 천안의 내 집 인근에서 한 손에
희랍어 성경을 들고 한 손엔 호미를 들고 있던 함석헌 선생이 떠오른다”며
“내 어린 시절엔 철저히 역사를 성찰하고, 우리 민족이 어떻게 가야 하는지
고민하며 깨워주는 분들이 있어 교회에 가는 게 감격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듣기보다는 등산을 가서 물소리
새소리를 듣는 게 참다운 예배라고 여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아무리 잘난 척해 봐도 인간은 인간이고, 변할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절망적인 인간이 무엇인가 희망을 바라보기 위해 종교를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앙 간증 성격의 고백에 이어 도올은 <요한복음 강해>(도올의 <교육방송>
인터넷 강의이자 최근 저작의 제목)에 대한 보수 기독교의 태도를 비판했다.
“새로운 해석을 했으면 ‘저런 시각으로도 볼 수 있구나’라고 여기고
스스로를 새롭게 하려고는 하지 않고, 분열만 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예수께서 유대의 지도자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않으면 나를 볼 수 없다고 했듯이
새롭고 거듭나지 않으면 썩어버린다”며 거듭남의 중요성을 연이어 강조했다.
도올은 “헤겔이 동양은 ‘정체의 왕국’이고 서양만이 새로워지는 문명이라고 했는데,
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고 동양이야말로 끊임없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우리 민족은 원래 샤머니즘이나 풍류도를 따르다
불교를 온전히 받아들였고, 그런 불교를 버리고 조선 500년간 유교를 받아들였고,
그런 유교를 버리고 지난 1세기 동안 기독교를 꽃피울 만큼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거듭나고 변화를 추구하며 정체되는 것을 싫어하고 진리를 추구하지,
특정한 종교에만 미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그는 “일제의 핍박을 받던 우리 민족이 기독교를 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성서의 시대적 배경인 로마로부터 지배당하던 팔레스타인 지역의 상황과 비슷해
민족적 시련을 이겨내는 데 기독교가 희망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도올은 그러나 “기독교를 보편주의로 받아들였는데, 기독교가 보편성을 잃고
편협한 모습으로 치닫는다면 유교처럼 버림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도올은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도 짚었다.
그는 요한복음에서 예수가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한 것에 대해
“예수님이 말한 포도나무는 하나님과 예수와 여러분과 모든 민족, 이슬람, 불교 등까지
함께 거하는 우주적 생명공동체로서 나무”라며
“그런데 마치 로마 황제가 심은 단 한 그루의 나무인 것으로 착각해
로마 황제가 공인한 성경에만 매달려 편협하게 서로 나누고 증오하고 반목하는
모습이야말로 반기독교적이고 반성령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도올은 이와 함께 “3세기까지 성경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초기 교회에선 여러 가지 텍스트는 있었지만 3세기까지 단일한 체제로서
성경이란 이름의 경전은 존재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만 있었다는 것이다.
도올은 “기독교가 313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공인받으면서 변질돼
황제의 종교가 되었다”고 지적했다.(한겨례신문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