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인터넽판 2007년 2월 8일 (사진은 네이버 포토앨범에서)
‘문학소녀’가 사라졌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김소월이며 윤동주 시집을 옆에 끼고 다니던 그 아름다운 누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일선 교사들에 의하면 이제는 중·고등학교에서도 문학소녀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청소년들은 시험에 대비해 억지로 시를 공부할지언정 시를 그 자체로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교양강의를 듣는 100여명의 학생 중에도 최근 1년 안에 서점에서 시집을 구입해본 사람은 열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관에 간 횟수를 물었더니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영화는 비로소 흥하고 시는 드디어 망한 것일까?
얼마 전에 참으로 좋은 시인 한 분이 돌아가셨다. 오규원 선생이다. 연예인의 교통사고는 네티즌들을 뜨겁게 달구기 일쑤인데 시인의 죽음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신문의 부고란 한 귀퉁이를 쓸쓸하게 차지할 뿐. 내 책꽂이에 꽂혀 있는 오규원 시인의 시집 ‘사랑의 기교’는 1977년에 찍은 것이다. 고등학생 때 서점에서 700원을 주고 샀다. 그 무렵 커피 한잔 값이 1000원쯤 했을까? 우리는 커피 한잔으로 혀끝의 달콤한 순간을 소비하고 만다. 그렇지만 이 시집은 30년 넘게 내 옆에 아주 가까이 머무르고 있다. 감동의 두께도 변하지 않고 말이다.
시집을 소장한다는 것은 특별한 감동을 소장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 사람들은 왜 도통 시를 읽지 않는 것일까? 시가 은유와 상징체계로 이루어져 난해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건 게으른 자의 변명이다. 내가 읽어본 시 중에는 해독이 불가능한 시보다는 특별한 즐거움을 주는 시가 훨씬 많다. 특별해지고 싶다면, 생의 특별한 감동을 원한다면 시를 좀 읽을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돈과 부동산으로만 인생을 바꾸려는 가련한 영혼들과는 과감하게 결별하고 시하고 친해질 수 없을까? 시는 삶을 돌아보게 하거나 지친 이에게는 이 세상이 살아볼 만한 곳임을 가르쳐준다.
시어 하나의 울림이 주는 파장 때문에 시를 읽다가 눈시울이 문득 뜨뜻해진 적이 있는 사람, 때로 시인의 엉뚱한 상상력이 주는 매력에 빠져 상투화되고 정형화된 세상을 혁신하고자 꿈꾸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프랑스인이나 중국인들이 사석에서 자기 나라 시인들의 시를 줄줄이 암송하는 것을 부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일본인들이 그들의 전통시가인 하이쿠에 대해 자랑할 때 멀뚱하게 쳐다보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최근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국립공원의 입장료를 없애면서 기존의 매표소를 ‘시인마을’로 바꾸고 거기에 시집을 비치해 놓았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예쁜 시집이다. 공원을 드나드는 국민들이 자연과 더불어 시를 즐기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저절로 흐뭇해진다. 산정에서 몇편의 시를 읽고 내려오면 산 아래에서의 삶도 그만큼 시적으로 바뀌지 않을지?
컴퓨터 앞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시를 얼마든지 맛볼 수 있는 세상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사이버문학광장(www.munjang.or.kr)은 문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대표적인 사이트다. 이곳에서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는 그야말로 시의 성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 관련 동영상, 노래로 만든 시, 시낭송 플래시, 시인들의 신작, 문예지 우수작품 등 1000여편에 가까운 시들이 누군가 자신을 클릭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시를 읽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거나 큰돈이 드는 게 아니다.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시집을 선물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불행한 사람을 나는 앞으로 교양인이라 부르지 않을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