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인터넽판 2007년 2월 22일치에서 펌.
〈발레리 줄레조/ 프랑스 마른라발레 대학 교수〉기고문
1990년대 초반 외국인의 무지한 눈으로 서울을 처음 접했던 나는 어디를 둘러봐도 시야에 들어오는 아파트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학 이전에 지리학을 공부한 나는 경관이 ‘사회적 실체들의 복합적 구조’를 드러낸다는 사실에 익숙하다. 직관적으로 나는 한국의 대단지 아파트가 급속한 경제성장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 경관의 요체라는 특징을 포착했고, 그래서 한국의 아파트를 잘 분석하면 이른바 ‘한강의 기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프랑스 학계에 제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국과 프랑스는 아파트에 대해 아주 상반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현대성과 부의 상징이다. 한국인 대다수는 아파트를 도시 팽창과 토지·주택 부족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생각한다. 반면 프랑스인들은 아파트를 현대 도시가 안고 있는 위기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사회적 유대와 인간적 친교를 단절시키는 주원인으로 본다. 프랑스에서 아파트가 골치 아픈 도시문제가 된 것은 1970년대 중반 오일 쇼크 이후 직면한 두 가지 난관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첫째는 주로 아프리카에서 이주해 온 이민자들을 프랑스 사회에 통합시키는 문제였다. 둘째는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공공주택 정책을 만드는 문제였다. 결국 이들 문제를 해결하는 데 프랑스의 도시정책은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오늘날과 같은 대단지 아파트가 문제 지역으로 ‘만들어졌다’. 아파트에 대해 한국인들이 갖는 좋은 이미지는 근대화의 건축적 표현을 아파트로 집약되게 만든 복잡한 시스템과 관련되어 있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극단적으로 빠른 근대화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 효율적인 도구요, 강력한 추진력 또는 상징물이었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주택문제 해결책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 문제는 주택의 질이며, 집값이며, 부동산 시장이다. 사실 아파트 지역을 중심으로 과열되는 부동산 투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주택문제와 무관하다.
이 ‘부동산 열풍’이야말로 지난 수년간 엄청난 속도로 구축된 진정한 ‘사회적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와 한국 사이에는 닮은 점도 있다. 양국 모두 아파트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나무 한 그루가 숲 전체를 가려버리는 식(프랑스식 표현)’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려진 이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산업화되고 잘 살게 되었다 해도 여전히 ‘사회·공간의 분열’이 강력하게 존재한다는 문제다.
주택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여전히 그림의 떡이며, 공공주택 내지 국민주택 공급 문제는 여전히 중대 과제다. 우리가 사는 도시란 그 외형이나 형태를 넘어 특정한 문화적·역사적 맥락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문제야말로 도시정책의 입안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도시 형태를 결정하는 그 어떤 필연적인 것도 없지만 그러한 이상과 욕구가 만들어 낸 ‘부드러운 도시’는 돌과 벽돌에 의해 만들어진 ‘딱딱한 도시’만큼이나 우리에겐 구체적 현실이다. 다른 많은 선진국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오늘날 한국의 도시계획에 있어서 진정한 도전은 우리가 만들어낸 ‘딱딱한 도시’ 속에 가난한 사람들의 ‘부드러운 도시’를 어떻게 담을 수 있느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