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동교회] 홈페이지에서 펌.
2. 본문의 대담일은 2004년 7월임.
*참고: '펌' 관련하여 오늘 전화로 담당자와 접촉함.
이 글을 옮기게 해주신 관계자와 [경동교회]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진은 플래쉬 방식이라 펌이 잘 안되네^^)
성공회 사제로서 '헌신의 삶'을 찾아 나선 '경동의 딸'-- 김기리 신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사제)
2004년 7월 오늘 우리 삶의 자리에서 젊은 성직자를 만나는 것은, 문득 길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등불을 찾은 것이려니-. 5월 27일 사제 서품을 받은 김기리 신부(30세,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교무국 사제, 전 경동교회 교우)와 마주 앉으니, 청순한 '희망의 별' 같아 보였다.
성공회 서울대성당 주임사제인 홍영선 신부께서는 5월 30일 성령강림절에 우리 교회 본당에서 열린 성공회 주교좌성당과 교환예배의 설교에서 "경동교회는 김기리 사제의 친정이고, 성공회에 시집보냈다. 그는 성공회 역사상 네 번째, 서울교구로는 첫 번째 여성 사제이다"라고 밝혔다." 신부가 된 지금도, 엄마가 '버려라'하는 것 중에 '차마 못 버리지'하는 것이 대부분은 경동교회에서 추억이 깃든 물건들이다.
중3때 중고등부 회장을 맡았는데, 이화수 집사님께서 '신우회 역사상 처음으로 탄생한 여회장'이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있다."며 가슴 벅차하였다. "언제 경동교회에 가야지요." "신부님이 되어서, 돌아오시면 안 되지요?" "경동교회는 그래도 고향인 걸요." -오가는 대화 속에는 청소년 시절의 향수가 짙게 배어 있었다. 우선, 어떤 연유로 성공회 신부가 되었는지, 성직자가 되는 수련의 길을 선택할 때에 부모님을 비롯 주위 분들과 갈등은 없었는지, 궁금해 물었다. "성공회의 '열린 신앙세계'를 동경해 왔다.
처음에는 성공회를 배우러 왔다가, 사제가 되었다. 그것은 또한 경동교회의 '열린 믿음의 정신'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부모님(김문환, 서미다수 집사)과 교회 목회자, 선후배들과 갈등이 없이 순조롭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오직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걸어왔다고 생각한다."숲으로 난 길을 따라 가듯, 이야기의 초점을 '성공회'로 끌어갔다. "성공회의 특징 하나는 자연스런 섬김과 나눔이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어떤 감정도 어떤 행동도 강요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편안한 가운데, 되레 스스로 해야 할 것을 찾게 한다."
"성공회 신앙의 특징은 전통, 이성, 성서 이다.""성공회는 우리나라에 1890년 영국 선교사에 의해 전파되었는데, 처음의 영어 명칭이 'Church of Korea'(한국교회)일 만큼 각 나라의 정신문화 토양에 뿌리를 내린다. 가톨릭과 달리, 중앙집권 제도를 가지지 않고, 영국 성공회는 '어머니 교회'일 뿐, 나라마다의 교회를 존중한다." "성공회는 우리나라와 세계에서 교파사이의 벽을 넘어 교회의 일치와 협력을 위한 교회 일치운동(에큐메니칼 운동)에 앞장 서 왔다. 성공회의 정신은 '너와 내가 다르다'가 아니라, '한 하나님을 믿는 형제'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성공회는 민족과 교회 역사에서 정의와 평화의 사도적 직분을 수행해 왔다는 것이다."
"성공회의 전례는 가톨릭을 닮았다. 그러나 예배의 하나하나 의미는 경동교회와 같다. 聖公會는 하나이요 거룩하고 공번되다는 의미로 '니케아 신경'(Nicene Creed)에서 따온 말로써, 전통을 중시한다. 가톨릭의 초대교회와 어긋나는 부분들, 이를테면 성모 마리아의 신앙, 교황의 통치력 등은 수용하지 않고 있다."길을 걷다가도 쉬고 싶어지듯, 바람의 속삭임처럼, "예배 중에 음률이 있는 기도를 해야 하는 신부는 노래 잘 하는 재주가 있는 분만 할 수 있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저는 노래는 못 부르는데 원래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 가사를 하도 많이 알아, 신학생 시절에 신부님이 '걸어 다니는 노래방'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자찬인 듯 타찬인 듯 말하였다. 이를 놓칠세라 경망스레 '뽕짝 가요'를 한 곡 요청했더니, "평소 자연스럽게 흥얼거리는 노래는 성가와 중2학생 때에 경동 중고등부 예술제에서 불렀던 '주님 나 여기 있으니, 주님 뜻대로 나 받으옵소서~' 이다. 굳이 가요라면, 음률보다 가사를 음미하는 편이고, 나이가 서른이라서만은 아닌데 '서른 즈음에' 노래를 가장 즐겨 부른다."고 미소를 얼굴에 실어 기대를 슬쩍 빗겨 나갔다.
오늘의 한국 교회가 만나고 있는 위기는 무엇인지, 캐물었다. "한국 교회는 한국 사람들 습성처럼 '솥뚜껑 근성'이 있는 듯하다. 쉽사리 확 뜨거워지고 확 식는 습성이 있다.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들이 부러워하는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교회, 청년들이 떠나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진단하였다.'문화선교'를 주창한 김문환 교수의 딸 입장에서 젊은이들을 향한 선교의 방향을 들려 달라고 귀를 기울였다. "요즘 청소년들의 말, 헤어스타일, 랩 음악 등은 무시할 수 없는 코드이긴 하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교회가 청소년들의 외형이 아닌 마음속에 있는 코드를 읽어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성경 속에서 '모델 여성'을 뽑아달라며 기다렸더니, "성경을 명상하면서 이 사람은 여성, 이 사람은 남성이라고 구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처럼 주님께 피와 눈물을 닦아주고 물을 가져다주는 등 '섬김과 나눔'을 실천한 여성이 많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성경에서 여성중에 온몸으로 주님을 찬양한 미리암(출애굽기 15:20)과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예수님을 도왔던 수산나(누가복음 8:3)를 개인적으로 모델로 삼는다."고 팔을 펼쳐 보였다.교회에서 여성 성직자의 특별한 역할에 관해 물었다. "목회의 대상은 모든 교우들이지만, 여성들과의 '나눔'이 특히 필요하다. 교회에서 기쁨도 많이 받지만 아픔 또한 많이 받는 사람들이 여성이다. 형식적이지 않고 같은 여성으로서 진실한 나눔을 실천하고 싶다.
경동교회에 있을 때, 제게 대한 목사님들의 돌봄과 한송죽 전도사님의 돌봄이 달랐다고 생각한다."'신부로써 결혼 주례는 결혼 전부터 할 것인지, 결혼 후로 미루어 두었다 할 것인지', 좀은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신부라는 호칭을 쓰면서도 결혼할 수 있는 것이 성공회의 장점이고 행복이다. 언제 혼배미사를 집전할 수 있을 것인지는 제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우들이 이끌어 주실 것이다. 혼배성사를 집전하는 것은 신부에게도 영광이다. 축복과 덕담을 하는 신부에게도 더욱 축복스러운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 주례의 메시지를 전한다면, 첫 째로 '정직'을 강조하고 싶다. 정직함 위에 믿음이 있고, 믿는 바탕에서 사랑할 수 있다. 어느 부부에게나, 어느 사람에게나 '정직함'이 첫째이다."'성직자가 되는 삶의 길에서 흔들림은 없었는지, 하나님의 도움은 어떻게 다가 왔는지', 확인해 보았다. "살면서 흔들림도 하나님의 도움도 내가 인식하는 것보다 분명히 많았다.
영국 유학중에도 성직에 고민하고 있을 때에 말레이시아 신부님이 '네가 지금까지 어떻게 이 길을 걸어왔는지 생각해 보라. 성직은 누가 떠밀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네가 하겠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해 보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하나님의 이끄심에 한번도 '싫어요' 하지 않고 늘 '예'라고 대답하고 따랐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이 나의 신앙이다."면서 눈시울을 얕게 적시었다.
아직 미혼인 채, 가족으로는 '성적보다는 경험'을 강조하며 자녀를 키운 아버지 김문환 집사(서울대 교수, 미학), 어머니 서미다수 집사와 오빠 김기민(독일 마르부르크대학교 박사과정 중, 정치학), 올케 조윤경(독일 도르트문트대학교 박사과정 중, 미술사학), 조카 시호(세 살)가 있다. 조카까지 헤아리면 6대째 기독교 가정으로 신앙기반이 탄탄하다. "저를 성장시킨 집에는 넷이 있다고 생각해요.
가정과 경동교회와 성공회, 그리고 잊지 못할 애정을 준 일본 쯔쿠바의 하숙집을 가슴에 늘 품고 있어요."우리 사회에 주는 긴요한 한 말씀의 메시지를 부탁하자, "사람이 우선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라고 서슴없이 말하며 밝게 웃었다.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기 전에 나는 공손히 기원했다. "사제가 되신 당신이야 말로, 이 세상의 기쁨과 슬픔을 밝히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소서!"
■ 글: 최 종 학 ■ 사진: 심 정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