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분 내내 끌려다닌 경기. 그러나 후반전엔 비교적 활발한 경기운영.
후반에 들어와 모처럼 한 몫 해낸 설기현. 오른쪽 날개의 시원한 질주-> 센터링-> 골문 앞에 선 장다리 조재진의 헤딩-> 이때 하늘을 향해 반사적으로 들어올린 박지성의 오른발. 극적으로 이룬 1 대 1 동점. 98년도 세계 챔피온이자 이름도 우아한 "레블뢰 군단"에 무릎 꿇지 않다. 한국팀은 승점 4점 확보하여 16강에 한걸음 더 다가가다. 짝짝짝~ 끝까지 "투혼"을 발휘한 "태극전사"들에게 박수.
그러나 엄밀히 말해 우리가 잘했다기 보다 프랑스가 못한 경기. 즉 일찍부터 한골을 지키려는 안이한 선택을 한 결과였다. 나는 프랑스 선수들의 나이와 체력을 탓하는 전문가들의 해설에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화면으로 보기에 지친 기색을 먼저 드러낸 건 오히려 우리 쪽이었다. 더 큰 이유는 지단, 앙리, 뛰랑 등 내로라하는 1급 선수들이 선취골 이후 약삭빠르게 경기를 '관리'하려 들었던 것이다. 아니면 한국 대표팀의 "강철같은 투혼"을 너무 얕잡아 봤거나. 아드보카트 감독의 능력은 벌써 검증됐는지도 모른다. 허나 그가 맡은 후 훈련했던 기간이 짧아서일까. 지금 대표팀은 여러 면에서 2002년보다 처지는듯 하다. 그렇다고 나름의 색깔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식 축구의 독창성은 어디에 있을까. 승패를 떠나 현 대표팀에 마냥 박수만을 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스포츠 경기를 분해한다면 시.공간과 상관한 유동성의 지배로 모아진다. 이러한 유동성에 발로 차는 원시적 파괴력이 더해진다는 데에 축구의 특징이 있고. 그래서 그만큼 신체적 조건에서 유불리가 판가름날 터. 그러나 '축구공은 둥글다'. 아무리 약한 팀이라도 90분을 뛰다보면 3번 쯤은 기회를 맞이한다. 그것도 결정적인 기회를. 오늘 새벽 우리에겐 행운이 줄곧 따랐다. 결정적인 기회가 딱 한번, 그런데 그걸 골로 연결하는 엄청난 집중력을 보였을 뿐이다. 더구나 말썽이 된 비에리아의 헤딩 슛은 또 하나의 골로 보였다. 이 논란거리에 대해선 문지기 이운재가 명답을 제시했다. "골이건 노골이건 심판이 노골이라면 노골이다". 말을 바꿔보자. 결정적인 기회가 한번이었다는 분석이 맞다면 나머지 시간은 대단히 비효율적으로 뛰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 대표팀의 전력...문제가 많지 않은가.
어느 팀이든 32강에 속한다면 아무리 강팀이라도 어린애 손목 비틀듯 다루기는 불가능하다. 그런 예는 거의 모든 경기에서 볼 수 있다. 미국-이딸리아, 일본-호주, 프랑스-스위스, 체코-가나, 브라질-호주, 독일-폴란드, 잉글랜드-트리니나드 토바고 전을 보라. 힘과 기술의 우열에도 불구하고 스물 두명이 정면으로 서로 맞받아치지 않는가. 공이 둥글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이다. 이건 감독의 작전이나 체력과는 다른 문제이다. 축구경기가 요구하는 기본과 관련한 문제인 것이다. 흔히 중원을 지배하는 압박축구를 말한다. 역으로 생각해 보자. 우리의 압박은 그렇다 치고 문제는 상대방이 얄밉게도 우리를 압박할 때 발생한다. 심하게 말하면 우리는 이때 거의 한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쩔쩔 맸다.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환히 드러났고 이번 프랑스전이 그랬다. 마치 일순 호흡이 멈추듯이. 이건 상상력의 문제이다. 공간을 이동하는 유동성이 정지하면 몸놀림마저 굳어지는 것이다.
뱁새보고 황새 되라는 말도 아니고 독창성이라고 해서 마법을 주문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히딩크가 오래 전에 그 해법을 제시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동양인 특유의 부지런함과 민첩함일 수도 있는데 그점에서는 현재 일본이 시사하는 바 크다. 조직력과 유연한 패스에서 그들은 수준 높은 아시아 팀을 대변한다. 어렵지 않다. 우리 자신이 4년전 보여줬던 모습이기도 하다. 아직도 "근성"이나 "정신력"을 내세운다면 나오는 건 쓴웃음이다. 이젠 이미지에도 눈길을 줘야 한다. 우리 팀이 실망스런 경기를 펼칠 때마다 툭하면 나오는 자질론과 뇌물수수설, 기회주의라는 칙칙한 반응들을 무시한다고 될 일만은 아니다.
월드컵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건 다름 아닌 국가이다. 휘날리는 국기없는 월드컵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국가에는 여러 이미지가 중첩된다. 국가는 단일한 유기체인가? 아마 '평균적 한국인'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그 중에는 피의 신화도 끼어 있다. 하지만 월드컵은 강고한 고정관념의 벽도 허무는 역할을 한다. 거의 모든 나라의 대표팀의 살갗은 얼룩달룩하지 않은가. 프랑스만 해도 거의 흑인 일색이다. 유명한 지네딘 지단도 알제리아에서 태어났다. 개최국 독일 팀에는 흑인선수의 자태가 선명하고 일본도 오래 전부터 예외가 아니다. 대개의 사정이 그렇다면 한국 대표팀은 거꾸로 남들 눈에 튀어(?) 보이지 않을까.
브라질이 삼바 리듬의 축구라면 프랑스는 아트사커라고 한단다. '기예의 축구'라면 과연 프랑스 모델다운가. 축구경기에서도 종의 다양성은 축복처럼 보인다(브라질이여 우승 못해도 좋다. 부디 끝까지 그 아름다운 낭만을 버리지 마시라). 프랑스-그들은 분명 독자성을 무척 소중히 하는 사람들이다. 놓칠 수 없는 사실. 프랑스는 민주주의의 고향이다. 멀리는 프랑스 혁명이 떠오르고 가깝게는 1968 혁명이 발원했다. 20세기 들어 빛을 낸 현대철학의 갈래도 빼놓으면 안되리라. 3년 전에는 인종차별과 파시즘을 내세운 극우파 정치인 르펜을 정면에서 거부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프랑스 모델이라면 사회적 모순과 불평등, 비민주적 요소가 불거질 때마다 회피하지 않고 해결하는 노력이다. 요즈음 전세계를 휩쓰는 시장제일주의에 맞서서 대안을 모색하는 모습에서도 프랑스는 매우 독자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