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항해'하면서 자주 드는 생각 하나.
분명히 나는 사이버 공간에 대단히 긍정적이며 아직도(!) 찬탄을 보낼 때가 많다. 그런 만큼 다른 한편으론 누리꾼들에게 거는 기대 또한 높다. 우선 이 만큼 거대한 광장이 따로 없지 않은가. 그것도 빛의 속도로 지구를 가로지르면서. 거기에선 옛스럽고 촌스런 권위들이 허물어지고 무용해진다. 이와 같은 소통과 양방향의 '민주주의의 숲'만 해도 다른 단점들을 너끈히 제압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어느 철학자는 "집단지성"이란 말로 이 21세기 현상을 풀이했다. 그렇다면 사이버 광장은 그대로 직접 민주주의의 아고라가 될 수도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걱정으로 시끄러운 요즘, 인터넷의 위력은 새삼 주목할만 하다. 그 중에서도 무척 인상적이었던 사건은 며칠 전 MBC TV의 [100분토론] 시간. 시청자의 의견을 듣는 순서에서 미국에서 날아온 이선영 주부의 '번개 같은' 전화 한통이 바로 그랬다. 첨예한 문제 한가운데에서 그리고 복잡한 과학의 도구들 앞에서, 비전문가인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다 옳다고 믿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엄마의 목소리에는,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맹목에 가까운 '관제성' 발언들을 잠재우기에 충분한 힘이 있었다. 나는 그 이유가 누리꾼들이 공유함직한 여과하지 아니한 진정성 때문이었다고 믿는다.
시나브로 개인들의 체감도를 확장시키는 시공간에도 눈길이 간다.
버마 민중들을 사정 없이 강타하고 있는 쓰나미, 중국 쓰촨성의 대지진, 북한의 헐벗은 산에 나무심기, 수단과 소말리아가 가리키는 아프리카의 비참한 현실 등. 인터넷이 없었다면 이를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 통로는 사실 상 없지 않을까. 이 점은 굳이 빠르기의 문제에서만은 아니다. 티브이를 포함하여 기존 매체들은 편집의 벽이 무척 높기 때문이다. 그 편집의 기반은 대개 특수이익을 뒤에 숨긴 일방적 재단이자 배제이기 십상이다. 아랍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알 자지라> 방송 같은 건 예전엔 꿈도 꾸지 못했다.
위에서 조금 더 나아가 본다. 이와 같은 인터넷의 '빛'은 어디까지 뻗어나갈까. 무엇보다 우리들에게 타인과 사회를 향한 관심을 북돋워줄 수 있는가. 나아가 꽁꽁 빗장을 건 자아를 뚫고들어가 더 큰 나를 찾는 문을 열어 줄 수 있는가. 매체를 통해 사랑의 감정을 양육하기, 말하자면 이게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큰 숙제라고 생각한다. 재미 있는 얘기 하나만 더. 작은 나의 바람. 어느날 새 교우가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대문교회 홈피를 보니까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한번 찾아 왔지요."^^
군소리:
이수진 관리자님. [예배와 말씀]방의 <예배안내>를 알맞게 고쳐놓으셨더군요(목요예배->수요예배). 아주 잘 하셨습니다. 그 밖에 더 좋게 할 부분이 있으면 서로 도우며 잘 해 봅시다. 찬석이 축구공 차듯 씩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