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 혹 -
소비 사회를 사는 즐거움의 하나를 말하자면 무엇보다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이겠습니다. 여행지를 선택하는 데나 상품을 사는 데 요즘처럼 선택의 여지가 많은 적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선택의 폭은 처음에는 행복감을 주지만 자칫하면 오히려 삶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이 이른바 '선택의 역설'입니다.
'행복'을 다룬 최근의 여러 책을 보면, 이러한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한 뒤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겪는 커다란 어려움과 불만족의 큰 이유를 설명하곤 합니다. 스위스 출신의 유명한 경영인이자 문학가인 롤프 도벨리는 그의 책 『스마트한 생각들』에서 과거와 현재를 이렇게 비교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요구르트는 세 종류, 텔레비전 채널은 세 개, 교회는 두 군데, 치즈는 두 종류(신선하거나 혹은 부드럽거나), 생선은 송어 한 종류, 전화기는 스위스 우편국에서 연결해 주는 한 종류가 전부였다. 다이얼이 부착된 검은 전화 상자는 전화를 할 때 외에는 쓸 수 있는 기능이 없었으며, 그 당시에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휴대 전화 가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수많은 종류의 휴대 전화 모델들과 전화 요금제라는 홍수에 빠져 익사할 지경이다."
선택의 역설 앞에서 우리가 만나는 어려움은 이중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너무 많다 보니 선택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선택한 뒤에도 그것이 최상의 선택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선택한 것에 기웃거리며 선망과 질시, 또는 우월감 같은 건강하지 못한 감정에 시달리게 됩니다. 결국 다양한 상품들 속에서 사람들은 삶의 자연스러운 기쁨보다는 신경증을 얻을 뿐입니다.
선택의 역설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삶의 본질적인 것에 뿌리내릴 때 비로소 그 외의 다양한 것들을 행복한 삶을 위하여 지혜롭게 선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의, 유혹을 이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 마음속에 늘 간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비 사회 속에서 신기루 같은 이루 셀 수조차 없이 많고 끊임없이 증식되는 욕망의 대상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결코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여 주셨듯이, 가장 중요한 기준인 주님과 복음에 뿌리내린 삶을 먼저 선택하도록 애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