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으로 -
사순 시기가 깊어 가는 사순 제4주일을 '장미 주일'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요즈음은 보기 드물지만 이날 사제가 자색이 아닌 장미색 제의를 입고 전례를 거행한 데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희생과 단식, 보속 등을 엄격히 지키는 이 사순 시기에 부활의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며 위로하는 '장밋빛 주일'을 보내는 것은 낯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고 느끼는 것의 중요성을 알기에 오늘의 이 거룩한 전례가 더욱더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지닌 사람의 특징을 올바르고 합당한 일에서 기쁨을 느낄 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순 시기가 신앙인으로서 필요한 덕을 키우고 수양하는 때라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쁨을 느끼는지 잘 살펴볼 일입니다. 기쁨이 그저 걱정거리가 없어진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체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사순 시기의 전례를 통하여 조금씩 깨달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삶에서 '변화의 표징'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때 느끼는 기쁨이야말로 사순 시기를 뜻있게 보내는 이들의 특권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발견하는 것은, 이러한 기쁨을 얻고자 노력하지만 이 기쁨은 자기 자신이 완성하고 누리는 기쁨이 아니라, 주님의 성령으로 완성되도록 '내어놓는' 기쁨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미완성의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참기쁨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전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처드 세넷이라는 사회학자는 『장인』이라는 책에서, 훌륭한 장인은 역설적으로 '완벽 주의'를 피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완벽 주의와 씨름하다 보면 나 자신을 의심하는 일을 해 보이려는 꼴이 되고 만다. 이 지경에 이르면 제작자의 정신 상태는 지금 만드는 물건이 해야 할 일보다도 제작자 본인의 역량을 보여 주겠다는 쪽으로 더 쏠리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빛 속의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그러한 삶에는 장애와 오류와 박해가 생기지만 마침내 빛을 따르고 빛에 개방된 삶입니다. 그 빛이 온전히 자신을 비추고 채운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느껴야 하고 또한 느낄 수 있는 기쁨의 본질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