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덤밖으로 -
오늘 복음은 여러 대목에서 우리 각자의 인생살이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신앙인의 관점에서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 가끔 떠오르는 것이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유명한 소설 『죄와 벌』입니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와 창녀 소냐의 만남에서 오늘의 복음 말씀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잘못된 철학과 자격지심, 오만함이 결부된 악의 포로입니다. 그러기에 전당포의 노파를 살해하고도 그 죄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불안과 자신 안에서 조금씩 싹트는 죄의식을 부정하는 자신의 철학에 대한 의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가까스로 지탱해 온 그의 세계관은 마침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젊은 여인 소냐에게 감동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비록 생활고 때문에 몸을 팔아야 하는 가련한 신세이지만 순수한 믿음과 영혼을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소냐를 찾아간 주인공이 그녀의 발에 입을 맞추며 이렇게 말하는 장면에서 그의 변화가 잘 드러납니다. "나는 당신에게 절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고통에 절을 한 거요." 그리고 그는 소냐의 서랍장 위에 있는 낡은 『신약 성경』 한 권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갑자기 라자로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달라고 청합니다. 잠시 주저하던 소냐는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요한 복음서의 대목을 천천히 읽어 줍니다.
작가는 여러 면에 걸쳐 이 성경 이야기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말씀을 읽는 순결한 '매춘부'와 말씀을 듣는 비참한 '살인자'에게 이 말씀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놀랍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냐처럼 무겁디무거운 인생의 짐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무덤에 갇힌 것 같은 신세이든, 라스콜니코프처럼 자신의 아집과 악행으로 스스로를 영적으로 죽이고 무덤 속에 웅크리고 있는 신세이든, 그것의 어느 정도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하시는 예수님의 이 외침은 바로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우리에 대한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