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현실
성탄절은 꿈과 낭만과 환상의 계절입니다. 크리스마스트리, 산타클로스, 루돌프 사슴, 구유, 캐롤, 동방박사... 번쩍거리는 불빛들과 선물들, 축하카드... 성탄절이 다가오면 괜히 가슴이 설레고, 함박눈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린이들만의 심정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속으로 들어가면, 꿈과 낭만과 환상은 온데간데없고, 사느냐 죽느냐, 살벌한 분위기로 바뀌고 맙니다.
성당마다 구유를 멋있게 꾸며놓고 있지만, 실제로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결코 멋있는 곳이 아니었고, 그런 외양간에서 아기를 낳아야 하는 산모의 심정은 참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헤로데는 온 마을의 어린 아기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있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땅으로 피난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결코 환상이 아니고 현실입니다. 꿈과 낭만과 환상이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주지만, 항상 꿈속에서 살 수는 없는 일이고, 현실의 차가운 바람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신앙인의 삶은 더욱더 냉정한 현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의 감동과 성탄의 기쁨은 항상 짧게 지나가고, 사순절과 대림절의 무거운 분위기는 길게, 아주 길게, 해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현실은 더욱 무겁고 어둡고 추울 것입니다. 사순절과 대림절을 외면한다면, 부활절과 성탄절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