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례자 요한 -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와 관계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그 대상을 인식하고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그것은 무(無)와 다름없습니다.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 대상은 비로소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 세례자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즈카르야는 주님의 천사가 일러 준 대로 자기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이름이 하느님에게서 주어졌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께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요한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제 요한은 하느님께 특별히 선택되어 소명을 받습니다. 그의 소명은 자신의 이름의 뜻 그대로, 주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여 ‘주님의 자애로우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요한의 탄생은 수천 년 동안 약속되었던 하느님의 자비가 이 세상에 실현되었다는 징표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가 하느님과 만남의 인연을 맺은 것도 수천 년 전부터 이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끊이지 않는 하느님의 보살핌과 안배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하느님 없이는 이해와 설명이 될 수 없습니다.
영성체 묵상
겸손은 흙과 같습니다. 흙은 자신을 바쳐 생명을 자라게 하고 꽃과 열매를 맺게 합니다. 흙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할 따름입니다. 요한 세례자는 흙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우리도 겸손한 마음으로 이웃을 위하여 흙처럼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