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자신의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이 말을 계속 곱씹어 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행복의 이유는 거의 비슷하지만 불행의 이유는 너무나도 다양하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별것도 아닌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위기처럼 생각되는 불행의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고민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교회에서 아주 열심히 활동하는 중에 어떤 한 형제님과의 충돌 때문에 교회 활동을 그만 두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혹시 다른 분들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니라고 하더군요] 다른 분들하고는 너무나도 사이가 좋고, 자신의 활동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해준다 합니다. 저는 이분께 이런 말을 해드렸습니다. [왜 형제님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지 않고 싫어 하는 한 사람만을 생각하면서 괴로워하십니까? 자기를 이해해주는 한 사람의 친구로 인해서도 감사하고 행복할 수도 있는데, 형제님을 믿고 지지하는 많은 분들이 있는데 활동을 그만둘 정도로 힘들어하십니까? 활동을 접는 것은 형제님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딱 한 개가 부족한 것을 가지고서 [나는 그 한 개가 없어]라면서 불행해 하는 반면에, 또 어떤 사람은 한 개만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도 [너무나 다행이야]라면서 행복해 합니다. 사실 부정적인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생각되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가 부정적인 생각으로 상대방을 본다고 해서 상대방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마르타는 바로 이렇게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췄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랑하는 동생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 곁에 있는 동생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으로 예수님께 동생을 좀 나무라달라는 청까지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이런 말씀 으로 마르타에게 깨우침을 주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나는 과연 가장 필요한 한 가지를 선택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나요? 혹시 온갖 것들에 대한 걱정으로 하느님 말씀 듣는 것을 맨 뒷전에다 놓았던 것은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