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산수를 배웠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그런데 이 중에서 무엇을 제일 먼저 배울까요? 더하기를 제일 먼저 배우지요. 그리고 나누기는 제일 나중에 배웠고, 이것이 가장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더하기와 곱하기에 집중하고 있을 뿐, 나누기에는 관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즉, 자기 자신의 물질적인 재산 증가에만 관심을 두고 있을 뿐, 다른 사람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데에는 인색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물질적인 재산의 더하기와 곱하기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요?
2년 전, 신문기사에서 당시 사람들이 느끼는 부자의 기준을 보게 되었습니다. 글쎄 30억은 있어야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그마치 44%인 것입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1억만 있어도 부자라고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렇다면 10년 만에 물가가 30배 뛰었을까요? 아니지요. 우리의 욕심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런 욕심은 더하기와 곱하기를 계속하면 끝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더하기와 곱하기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나누기를 통해서 더 큰 기쁨을 얻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누기는 자신의 재산의 줄어듦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재산과 함께 욕심도 줄기 때문에, 작은 것에도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눔을 통해 오히려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어떤 탐욕에도 빠져 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아무리 부유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내가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이 탐욕입니다. 끝없는 더하기와 곱하기 바로 이것이 나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나를 지켜주고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는 것은 바로 나눔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오늘복음을 통해 비유로 말씀하신 창고에 가득 쌓아진 물건에 모든 것을 맡기고서 안심을 하는 부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대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래서 주님처럼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신앙인인 것입니다.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을까요? 더하기와 곱하기의 삶만을 추구했을까요? 아니면 빼기와 나누기의 삶을 추구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