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십니다. 불은 생활 속에서 보더라도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어두운 곳에 불을 켜라고 할 때는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되겠고, 추울 때는 불을 피우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던 몸이 자유스러이 움직일 수 있겠고, 음식을 끓일 때 불을 피우면 생활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엉뚱하게 건물 등에 불이 붙으면 크나큰 손해를 보며 생명까지도 빼앗기는 무서운 결과가 따라옵니다.
또는 남녀간의 사랑의 불, 또는 증오의 불길, 좋은 쇠는 불 속에서 단련된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불은 지금 현재 상태를 그대로 놔두지 않고 열을 내며 빠른 속도로 현재의 상태를 다른 모양으로 바꿔 놓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우리들은 생활 속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즉 지금 내 편의, 내 고집, 내 재산,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지 않고 어떤 모양으로든지 변화시켜 놓는 것이 불의 성질인 것입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생활에 불이 되어 말씀이 떨어지는 곳마다 그로 인해서 사람들 마음속에 구원을 향한 불길이 붙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말씀이십니다.
유대인들의 생활 속에서 불은 심판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았다면 몰라도 오신 이상 그분의 말씀은 사람들 마음속에 떨어져 받아들이겠느냐 안 받아들이겠느냐는 선택을 요구합니다. 지금까지 자기 나름대로 살아온 상태를 그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무엇 인가로 변화시키고 마는 불 속에 잠겨 갈들을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부간 둘 중에 하나를 택하자니 결국 한 가정에서 다섯 식구 중에서 셋이 그것을 반대해서 아버지가 아들을,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 이익과 권력을 위한 불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과 영생을 위한 선택의 갈림길에 다가왔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께서 원하시는 마음의 불을 태워 죄와 허물을 살라 버리고 하느님 말씀으로 빛과 열을 내는 믿음의 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를 보시며, [네 마음의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겠느냐?]”하십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구원의 불이 활활 타올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