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의 뜻에 맞추어 살아가는가?
두 젊은이가 같은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젊은이가 승진을 한 것입니다. 같이 입사한 다른 직원은 사장의 불공평한 대우에 불만을 품게 되었고, 그래서 사장에게 가서 따졌습니다. 그러자 사장님께서는 두 직원을 불러서 이런 명령을 내리는 것입니다. “자네들, 지금 당장 시장에 나가서 어떤 물건이 거래되는지 알아보게.”
얼마 뒤, 승진하지 못한 젊은이가 먼저 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농사꾼들이 지금 감자를 팔고 있습니다.”
사장은 이 젊은이에게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또 가격이 얼마인지를 물었습니다. 이 물음에 이 젊은이는 “그것까지 알아 오라고 하지 않으셨잖아요.”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것이에요.
잠시 뒤, 승진을 한 젊은이가 왔고, 그 역시 사장님께 보고를 합니다.
“오늘은 감자 마흔 포대가 거래되고 있으며, 가격은 한 포대에 만 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감자 하나를 꺼내 보이면서 “품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합니다. 사두면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라고 제안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불만 가득한 젊은이는 이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왜 승진을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사장이라면 어떤 사람을 더 좋아할 것 같습니까? 시키는 일만 마지못해 하는 직원의 모습일까요? 아니면 사장의 마음을 읽고 사장이 원하는 것을 행동하는 직원의 모습일까요? 아마 누구나 다 후자의 모습이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 직원의 입장에 섰을 때에는 앞선 그 불평에 찬 젊은이처럼 상대방의 불공평한 처사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 안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자신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행동을 했든 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내가 저 사람보다 더 잘 사느냐 못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면 원망의 화살이 우리들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이러한 반전의 말씀을 하십니다. 지금은 이렇지만 결국은 정반대의 모습으로써 살게 될 수가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런 정반대의 모습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주님의 사랑에 의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물론 주님의 사랑이 크기는 하지요. 하지만 그냥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내가 정말로 주님의 뜻에 맞게 생활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반전의 기회도 내게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뜻에 맞추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 주님의 뜻에 맞추는 우리들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오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