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모처럼 산책을 하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다정하게 걷고 계셨습니다. 다리를 절며 걷는 할머니를 보니 몸이 조금 불편하신 것 같았고, 그래서 옆에서 할아버지께서 부축을 하면서 힘들게 걸으십니다. 아마도 할머니의 운동을 위해 할아버지가 함께 나와서 걷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보게 되었어요. 할아버지께서 “우리 예쁜 할멈 사진 한 방 찍자.”고 말씀하시면서, 휴대전화의 디지털 카메라로 할머니를 찍는 것입니다. 그 순간 두 분의 사랑이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너무나 찐한 감동을 느끼게 되네요.
사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단어입니다. 아마 노래하려고 곡을 고를 때, ‘사랑’이라는 단어가 전혀 없는 노래를 고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제목에 ‘사랑’이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더라도, 가사 내용에는 꼭 들어있지요) 그 만큼 우리는 사랑을 많이 듣고 또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도 사랑이 드러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어요.
‘사람도 감동을 받는 그 사랑에 우리 주님께서는 어떠하실까? 말만 하는 사랑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몸으로 실천하는 뜨거운 사랑을 보실 때 얼마나 기뻐하실까?’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서 너무나 슬피 우는 과부를 만나십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과부의 슬픔 안에서 주님께서는 사랑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뜨거운 사랑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측은한 마음에, 이미 죽었지만 죽음에서 일으켜 세우시는 엄청난 기적을 행하십니다.
사랑을 많이 말하고, 또 사랑이라는 단어를 많이 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뜨겁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공허하게 들리는 하나의 단어의 조합에 불과한 사랑을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런 모습으로는 주님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마음이 담겨 있는 사랑이야 말로 주님을 움직일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