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사건은 바리사이파 사람인 시몬의 집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죄 많은 여인이 갑자기 식사자리에 나타나서 눈물로 예수의 발을 씻고, 발에 입을 맞추었고, 머리카락으로 닦았으며, 값비싼 향유를 예수께 발라 드렸던 것이다. 그러한 태도를 본 시몬은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저런 죄인이!” 또 “사람들에게 명성이 높은 예수가 저런 여자가 누구인줄도 모르다니!”하고 중얼거렸던 것이다.
이렇게 바리사이파사람 시몬처럼 우리도 다른 이를 잘못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흔히 외모를 보고 판단하거나, 어느 사람의 과거에 집착해 현실을 용서 못하고 하느님 앞에 그의 참다운 진실한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우리를 그렇게 대하지 않으신다는 점이다. 오늘도 죄 많은 여인이 눈물로 통회하는 것만을 보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
그런데 시몬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은 선한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떳떳했기에 눈물을 흘릴 필요성은커녕 예수의 용서가 아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내가 남을 용서 못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 만큼 용서를 받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며, 용서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용서가 무엇인지 모르니, 자기도 하느님 앞에 용서 못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진실히 용서하는 그 자리에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고 용서하는 그 행위에서 하느님을 따르는 표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사람을 하느님과 갈라놓고 단절시키는 것은 바로 "자기만족"이라는 점이다. 타인에게도 아쉬운 것을 모르고, 하느님께 대해서도 아쉬운 것을 모르니, 자기만족으로 차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거기에는 죄의 용서에 대한 진정한 고마움을 모르기에 하느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살펴 자기를 용서하라. 자기를 용서 못하는 것은 교만이고, 하느님께 머리를 숙이고 마음을 열 줄 모르는 것이다. 자기를 용서했으니 타인을 용서하라. 집, 직장, 친구, 이웃 등을 용서하라. 용서함으로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화해하라. 그럴때 평화가 있고, 새로이 무엇인가를 의욕 있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