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전에‘거룩한’이라는 항목을 찾아서 구약성경에 한정하여 살펴보면,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된다는 것을 뜻하며 상당히 위험한 땅에 발을 들여놓는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불타는 덤불 곁에서 하느님을 만났던 모세에게 하느님께서“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또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그곳이 거룩하고 극히 위험하기 때문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만화에 등장하는 작은 인물의 몸에 번갯불이 관통하는 생생한 그림에“사망 위험”이라는 경고문을 덧붙인 송전탑 경고판과 비슷해 보입니다. 이것이 구약성경에서 거룩함이 가리키는 일반적 의미이며, 이 사실에서 우리는 거룩한 장소나 거룩한 사람에 관해 언급할 때 흔히 질겁하는 반응이 나타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으로 넘어오면, 언뜻 보기에도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사도 바울은 자기가 쓴 편지들의 서두에서 수신자를 가리켜“거룩한”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즉“성도들”,“고린토에 있는 거룩한 사람들”,“필립비에 있는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우리를 약간 주춤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부르는 것은 바울이 이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이나 그의 서신에서 이 단어가 뜻하는 방식에 비추어 볼 때, 다시 말해‘거룩한’이라는 말이 구약성경에서 그렇듯이 위험하고 섬뜩하다는 뜻으로 쓰인 것에서 볼 때, 타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게 만드는 또 한 가지 중요한 본문을 요한복음에서 만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거룩하게 하려고 한다고 말하는 본문(요 17:17)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면서 제자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거룩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앞에 있는 죽음과 십자가를 향해 나아감으로써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이 이 본문의 의미입니다. 또 신약성경을 보면 여러 곳에서, 십자가 처형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거룩한 일이요, 그러면서도 종래의 거룩한 장소 밖에서 그리고 기존의 거룩한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도시의 성벽 밖 쓰레기장 위에 세워진 처형도구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거룩함은 쓰레기와 고통으로 가득한 인간 본성 한가운데로 예수께서 뚫고 들어오는 일입니다. 예수에게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완벽하게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참여하는 일을 뜻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