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영성에서는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기도를 몇 가지 단계로 구분해 왔습니다. 첫째 단계는‘빈말의 기도’입니다.‘빈말의 기도’는 한 마디로 무성의한 기도입니다. 말과 마음이 분리된 기도,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하는 내용에 자신의 주의와 진심을 담아 기도하지 않고 그저 입으로만 기도한다면 이는‘빈말의 기도’입니다. 이 단계에서 기도하는 이는 자신이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지 않음을 스스로 압니다. 둘째 단계는‘독백의 기도’입니다. 독백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듯 이 단계에서는 자신이 하고픈 말을 하느님께 쏟아놓고서 하느님의 응답을 듣지 않습니다. 이 단계에 있는 기도하는 이는 혼자 필요한 말을 간절한 마음으로 쏟아놓고는‘내 기도를 하느님이 들어주시는지 아닌지 두고 보자’며 자리를 일어섭니다.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우므로 이 기도는 위험한 기도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대화를 전제로 합니다. 진정으로 기도할 때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향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경청하고 무엇을 바라시는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단계는‘대화의 기도’입니다. 이 단계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를 하며 하느님께 말을 건네고,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하느님의 의향을 듣기도 합니다. 앞선 단계까지는 기도의 초점이 자신이지만, 대화의 기도 단계에서부터는 기도의 초점이 하느님께 맞춰집니다. 이때부터 하느님께서는 기도 안에 현존하시며 기도하는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 인격적 소통과 친교가 시작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기 시작하고 하느님께서도 기도하는 사람의 삶과 문제에 대하여 영향력을 행사하시기 시작합니다. 이 단계의 사람들은 기도를 체계 있게 배우고 자신에게 적합한 기도를 발견하여 꾸준히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넷째 단계의 기도는‘듣는 기도’입니다. 이 단계에 들어선 이들은 하느님과의 친교와 사랑으로 인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다는 믿음이 깊어집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자녀인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심을 차차 깨닫게 됩니다. 이 단계에서 하느님께서는 기도하는 이에게 때로는 새로운 깨달음으로, 때로는 새로운 의지를 불러일으킴으로, 때로는 충만함이나 평화에 머무르게 함으로, 때로는 기쁨을 만끽하게 해줌으로, 때로는 신선한 상상력이나 기억을 불러일으킴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단계에서 경험하는 하느님 사랑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기도하는 이로 하여금 자신이 바라는 것보다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더 소중히 여기게 합니다. 이제 기도하는 이는 하느님 앞에서 정직하며 기도하는 동안 마주하게 되는 자신의 죄, 한계를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일어나는 이 자기 직면은 자기초월과 성장이라는 열매로 나타납니다. 마지막 단계는‘사랑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아기가 엄마 품에서 고요히 쉬듯이 하느님 품에 머무는 기도입니다(요한 1:18). 이 단계에서는 하느님께서 내 안에, 내가 하느님 안에 머뭅니다. 여기서 기도하는 이는 하느님과의 연합 가운데 말과 생각과 감정을 넘어 깊은 사랑의 친교를 나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