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보 구티에레스의 죽음을 접하고
글쓴이 한상봉 <가톨릭 일꾼> 편집장, 도로시 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출처: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 2024. 10. 23
“깊은 고통을 안고 오늘 밤 우리의 사랑하는 친구이자 창립자인 구스타보 구티에레스가 세상을 떠났음을 발표합니다. 우리는 그의 삶과 우정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에서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한 그의 활동은 계속해서 길을 밝힐 것입니다. 더 정의롭고 형제애가 넘치는 세상을 위한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구스타보!”
해방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던 페루의 해방신학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메리노(Gustavo Gutiérrez Merino)가 10월 22일, 96세로 이승을 떠났다. 구티에레스가 설립한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연구소’(Bartolomé de las Casas Institute)는 “사랑하는 친구”를 호명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마찬가지로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8년, 구티에레즈의 90세 생일을 맞아 교회와 인류에 대한 그의 엄청난 공헌을 치하하며 감사의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페루의 도미니코수도회는 리마의 산토도밍고 대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라고 한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는 1928년 6월 8일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태어났다. 백인 아버지와 원주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메스티조였던 그는 어려서부터 병약했으며, 골수염 때문에 열두 살 때부터 열여덟 살까지 휠체어 신세를 지기도 했다. 구티에레스는 산마르코스 국립대학교 의대에 입학해 공부하다가 중간에 사제가 되기로 진로를 바꿨다. 페루 가톨릭대학교와 칠레의 산티아고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유럽으로 건너가 벨기에 루뱅가톨릭대학교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한 뒤, 프랑스의 리옹 가톨릭대학교와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교 등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공부했다. 그는 유학 중 칼 라너와 한스 큉, 스힐레벡스, 요한네스 메츠 등 유럽의 정치신학을 접할 수 있었다.
1959년 사제서품을 받은 구티에레스는 페루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고, 전국 가톨릭학생회 지도신부로도 활동했다. 이 당시 페루의 대학생들은 쿠바혁명에 고무되어 불의한 사회를 변혁하려는 열망에 가득찼다. 이 시기에 구티에레스는 카밀로 토레스와 체 게바라 등과 교재했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그가 리마의 빈민지역인 리막(Rimac)에서 경험한 가난한 이들과 그들의 참혹한 삶은 ‘해방신학’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1968년 열린 메데인 중남미주교회의에서 라틴아메리카 교회가 대륙의 과제를 ‘개발’에서 ‘해방’으로 전환하면서, 구티에레스가 1971년 펴낸 <해방신학>은 라틴아메리카 상황신학의 교과서처럼 읽혔고, 그는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연이어 <해방신학의 영성: 우리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련다>, <욥에 관하여>, <생명의 하느님> 등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신학학술지 <콘칠리움>의 편집위원으로도 일했다.
한편 후원자이며 보호자였던 리마교구의 란다수리 추기경이 사망하자, 구티에레스는 교구를 떠나 도미니코회에 입회했다. 구티에레스는 1992년 <라스 카사스: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서>를 출판했는데, 그가 그토록 존경한 16세기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한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신부가 도미니코회였기 때문이다. 그가 유럽에서 공부할 때 영향을 받은 이브 콩가르, 세뉘, 스힐레벡스 등이 모두 도미니코회 소속이기도 했다.
그의 신학적, 영성적 문제 의식은 “어떻게 이방인의 땅에서 하느님을 찬미할 것인가?” 하고 묻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우물에서 마신다>는 책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의 서문은 유명한 영성작가 헨리 나웬이 썼다. 이 책에서 구티에레스는 이렇게 묻고 있다.
“하느님을 ‘찬미’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리지 않고 기도가 없다면 크리스찬 생활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르는 찬미가가 있으며 바로 이 찬미가로부터 그들이 하느님의 현존과 부재를 깨닫게 된다. 라틴아미리카를 배경으로 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불의하고 제 명대로 못 사는 죽음의 세계 가운데서 어떻게 하느님에게 생명의 선물에 대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가? 우리의 형제자매가 고통당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줄 안다고 기쁨을 드러낼 수 있을까? 온 국민의 고통이 우리의 목구멍을 막아놓는데 어떻게 우리가 찬미가를 부를 수 있을까?”
메데인 주교회의는 하느님의 부재를 느끼게 하는 불의한 상황을 “제도화된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라 했고, 이런 상황을 푸에블라 주교회의는 “비인간적”이며 “복음에 반대된다”고 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피난민’이 아니라 ‘온전한 주민’으로 살게 하셨는데, 가난한 이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이방인’처럼 착취당하며 살고 있다고 구티에레스는 말했다. 구티에레스가 말하는 ‘해방신학’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투쟁이 “사회적이며 역사적인 차원”을 얻어야 하고, 자기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민중들의 투쟁은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길 위에 있다”고 했다. 그 길에서 하느님을 고백하는 게 ‘해방신학’이다.
구티에레스는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강조하는데, 1982년 6개월간 리마에 머물면서 구티에레스와 교제했던 헨리 나웬은 그가 만난 ‘새로운 그리스도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의 주님에 대하여 말하는 방법은 대단히 직접적이고 두려움이 없는 것이어서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벌이는 그들의 사목활동은 단순한 개념이나 이론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를 위한 투쟁의 한가운데 있는 사랑하는 하느님의 현존을 깊이 인격적으로 체험한 데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거기에는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그곳에는 따뜻한 형제애와 너그러움이 있다. 거기에는 겸손과 보살핌이 있고, 이러한 은총의 선물들은 고통받는 사람들 가운데서 당신의 증인이 되라고 불러 주시는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해방신학은 단순한 ‘정치신학’이 아니다. 그것은 복음에 앞에 선 인간의 당연한 응답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지침이고, 불의한 사회구조 안에서 고통받는 민중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행할 수 있는 ‘영적 투쟁’이 왜 사회적 역사적 차원을 포함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한 번도 자신을 ‘해방신학자’라고 표명한 적이 없지만, 아니 그렇게 표명할 필요도 없지만,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종의 행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해방신학은 이미 라틴아메리카의 공식적 신학이며, 새로운 도전을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지고 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상을 섬기고 있는 교회를 향해서도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해방신학은 오늘도 “사랑하기 위해서 자유롭게 되라”고 말하고 있다.
구티에레스는 <해방신학> 마지막 구절에서 교회를 향해 ‘중대한 질문’을 던진다.
“가난을 거부하고, 가난에 대항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난해질 때에 비로소 교회는 ‘정신적 가난’이라는 것을 설교할 수 있다. 정신적 가난이란 인간과 역사가 하느님이 언약하신 미래에 자기를 개방함이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교회는 인간에게 있는 모든 불의를 고발하는 예언자적 사명을 다하고, 그 외침에 귀기울이게 만들 것이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만 교회는 해방의 말씀, 참다운 형제애의 말씀을 설교할 수 있을 것이다. ... 교회로서는 가난의 증언이야말로 교회의 사명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데 절대 필요한 표징이다.”
우리 시대의 증언자이며 예언자였던 구스타보 구티에레스의 죽음을 바라보며, 그의 귀한 깨달음이 우리 안에서 허언이 되지 않도록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필요할 것이다. 교회는 여전히 더디지만 전진하고 있으며, 구티에레스가 육신을 벗고 더 자유롭게 우리 안에 그 영이 스미도록 간구하게 되는 오늘이다. 주님, 그에게 축복을 내리소서. 구티에레스의 영혼을 온전히 당신 안에 받아들이소서. 아멘.
한상봉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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