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내 대북 인식 격차 줄여야 한다"
출처-<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 2024년 11월 21일
글쓴이 정현진 기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와 평화나눔연구소가 2024 한반도 평화 나눔 포럼 "평화를 향한 여정"을 마련했다.
15일 서울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열린 포럼은 '평화 증진을 위한 국제적 연대', '한반도 갈등 해소를 위한 교회의 인식'에 관한 주제 발표와 '청년과 함께하는 평화 증진의 길'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첫 세션에서는 하인츠-게르하르트 유스텐호번 박사(신학과 평화 연구소)가 '독일 통일의 전제 조건으로서 화해와 가톨릭 교회의 역할'을, 마르코 프란치오니 박사(산 에디지오 공동체)가 '평화는 언제나 가능한 것'을 발표했다.
독일 통일과 주변국 화해에 가톨릭교회의 역할
하인츠-게르하르트 유스텐호번 박사는 가톨릭교회와 개인,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1990년 독일과 그 이웃 나라인 프랑스, 폴란드를 화해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던 점에 비춰, 독일 통일 선제 과제로서 ‘정치적 화해’에 주목했다.
신학적 이해에서 ‘화해’ 개념을 가져온 그는 “화해는 하느님의 선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으로 증거되는 인간에 대한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우리가 행한 일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잘못한 일을 되돌리게 하시고 새롭게 시작하게 하신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종교 경험이 정치적 관련성을 갖는 것은 당연하며, 모든 시대에 그리스도교인들은 자신이 잘못한 이들에게 용서를 구했다”며, “교회는 자신이 잘못한 일을 고백할 때만 화해를 위한 옹호의 목소리에 신뢰가 실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스텐호번 박사는 화해란 피해자와 가해자 쌍방에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가해자는 자신의 죄와 책임, 불의함을 인정하되, 피해자에게 용서 받을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용서란 대가 없이 주어지는 산물이고, 일어날 수 있지만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없다. 이는 독일의 이웃 국가와 이룬 정치적 화해에도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독일과 폴란드 화해와 관련해 유스텐호번 박사는 독일의 폭력으로 생긴 폴란드인들의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 폴란드 가톨릭교회의 주교들이 나섰다면서, “1963년 폴란드 주교들은 독일 주교들에게 양국 공통의 역사를 언급하는 편지를 쓰고, 양국 관계의 새 출발을 제안했다. 그럼에도 정치적 화해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일을 대표하는 이들이 오늘날에도 용서를 구하는 것은 이후 세대의 책임을 논해야 하기 때문”이며, “민족이라는 집합적 정체성이 세대를 따라 계승되는 책임의 맥락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또 “독일은 다음 세대가 용서를 빌 때 이웃나라들이 이를 환영하고 사과를 받아들여왔다”며, “오늘날 계속되는 화해 과정은 유럽 연합의 필수 토대이고, 가톨릭 교인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역사적 배경은 달랐으나 그리스도교인들과 가톨릭은 독일 통일에 직접 일조했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과 인접국 간 화해에서 가톨릭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했고 신자 개개인들도 반대세력들에게 다가갔다. 정치인들은 화해가 필요하다는 확신을 정치 영역에 심으면서 민족 간 미움을 극복하고 공동의 미래를 건설하고자 했다”면서, “(그러나) 오래된 분노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는 데다가, 정치 목적을 위해 악용될 수 있다. 따라서 미래 세대가 화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 끊임없이 이를 상기시키고 새로운 화해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앙을 바탕으로 한 대화의 힘
마르코 프란치오니 박사(산 에디지오 공동체)는 위기 시나리오 속 ‘산 에디지오 공동체’의 경험을 바탕으로 '평화는 언제나 가능하다'고 말했다.
산 에디지오 공동체는 국제 신앙에 기반을 둔 단체로 1968년 로마에서 설립됐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안드레아 리카르디 교수가 주창하여 출범했고, 평신도 단체로 교황청의 인정을 받았다. 전 세계 70여 개 나라에서 활동하는 가운데, 사회 변두리와 소외 지역에 관심을 쏟는다. 이들은 가난한 이들과 평화를 위해 자발적이고 자유롭게 활동하며 헌신한다.
프란치오니 박사는 이 공동체는 “전쟁이 모든 빈곤의 원인임을 인식하면서 평화를 위해 일하고 평화가 위험에 처한 곳에서 이를 보호하고 재건했으며, 평화가 사라진 곳에서 대화가 이뤄지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평화를 위해 분쟁 조정, 사회 내 평화의 문화를 촉진하고, 이러한 노력들이 아시시의 정신과 종교 간 대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 에디지오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활동하고 있다. 프란치오니 박사에 따르면, 2011년 로마 소재 북한 대사관과 우호 관계를 수립한 이래, 인도적 협력과 대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북한과 협력하는 극히 일부 종교 단체로서 투명성과 모니터링, 아동의 자유가 협력의 필수 조건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하면서, 대화와 상호 존중하는 자세로 북한 당국과 관계를 수립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북한 대표와 여러 공식 (종교)단체들을 만나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중요한 인도주의적 가치를 전파하면서 협력과 대화가 의심의 눈초리로 봐야 할 적이 아니라 서로 돕는 형제들임을 보여 줬다면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분열 때문에 나라를 고립시키는 장벽을 무너뜨리기를 주저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신앙의 힘으로 문을 열고, 다리를 놓고, 이를 통해 희망을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스텐호번 박사의 발제문을 놓고 토론을 한 이동기 교수(강원대 평화학과)는 “화해는 독자적 가치와 지속, 다양한 요인과 자체 역동성을 갖는 고유한 과정”이라며, 과연 화해가 다른 어떤 것의 전제 조건일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 교수는 화해가 통일로 가는 도정에 다소 의미를 띠겠지만, 화해로써 통일 과정 전체가 완성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계속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면서, “한반도 문제에서 남북 간 화해를 통일의 전 단계로 보거나, 동아시아 정치적 통합의 차원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합의가 이뤄지면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보통 화해나 용서는 진실, 정의, 기억을 기반으로 하지만, 실제 과정은 그렇지 않다면서, “역사적 정의나 불의에 대한 기억은 일반적으로 용서의 불가능함과 불화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서로 다른 기억과 진실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화해하기가 어렵고, 서로 다른 정의를 주장하므로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용서나 화해는 한 번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마르코 프란치오니의 발표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손서정 박사(가톨릭대 강사,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는 ”산 에디지오 공동체의 평화를 위한 첫걸음으로서 만남과 대화는 우리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면서, ”만남과 대화를 통한 관계 맺음은 분쟁 조정뿐 아니라, 일상 삶에서 다층, 다면적 사회영역까지 평화를 촉진시키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자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삶을 살리는 평화의 문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평화 교육에 천착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대한 교회의 사명과 역할을 강조했다. 또 ”교회는 내밀한 신앙과 체험을 근간으로 하여 사회적으로 확장된 공동체로서, 평화를 세상 끝까지 선포해야 하는 사명을 지닌다. 평화가 시급한 때에 평화를 위한, 평화에 대한, 평화에 의한 교육을 등한시한다면 교회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저버리는 셈“이라며, ”사회 내에 팽배한 이분법과 적대 문화를 평화 문화로 전환하고 일반 신자와 시민들의 평화 공감력을 향상시키는 적극적 평화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북한에 대한 인식 변화 위한 보도 더욱 필요
북한 문제에 신앙적 사명 강조 넘어서야
두 번째 세션에서는 '가톨릭 언론을 통한 교회의 인식'과 '가톨릭 사제들의 통일과 교회에 대한 인식'을 살폈다.
먼저 임강택 씨(평화나눔연구소 부소장), 최이슬 씨(한국수출입은행 연구원), 고광영 씨(평화나눔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이시권 씨(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연구,홍보팀장)는 공동 연구 결과를 통해 '가톨릭 언론을 통해서 살펴본 교회의 인식'에 대해 발표했다.
이들은 “북한 문제와 관련, 사회 갈등을 바라보는 교회의 인식을 다루면서 일반사회에 팽배한 의견 대립과 갈등, 대화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 행동으로 옮기는 노력에서 교회는 자유로운지, 평화 증진이라는 사명을 위해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이와 관련한 교회 언론의 역할과 사명은 어떻게 구현돼왔는지” 질문하면서, 이런질문들에 답변하고자 지난 2000 년부터 24 년 동안 <가톨릭신문>과 <가톨릭평화신문>에 실렸던 관련 기사를 분석했다.
관찰, 판단, 실천이라는 큰 분류에서 교계 매체의 북한 관련 보도의 비중은 실천, 판단, 관찰 순이었다. 또 교회언론에 반영된 남북 관계 냉각과 단절, 국제적 갈등의 심화 상황을 보면 실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던 반면에 관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대 북한 지원 및 교류 활동이 단절되었을 시기, 교회 관심은 남북한 상황에 대한 이해와 개선책 논의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주체는 주교회의 등을 중심으로 하는 고위성직자 기구들이었다. 실천 내용 별로 보면, 국가, 사회, 교회의 대북 지원, 북향민 지원, 농촌 지원 사업이 등장하고 있지만, 교육과 같은 신자들의 인식 변화를 이끄는 활동 비중은 줄곧 낮았다.
연구 성과물이 시사하는 요점들은 “북한 문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정치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교회가 북한 내부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 더욱 적극적이고 체계적 노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또 교회가 북한 문제를 판단, 평가하면서 신앙인의 사명과 의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넘어 인간의 본성(양심)에 호소하는 정서적 접근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북한 문제에서 비롯한 사회 갈등을 개선하고자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해야 하며, 이를 위해 효과적이고 실질적 방식을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연구팀은 이 모든 과정에서 청년들의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평화를 실천하는 시민으로 성장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교구별 응답 온도 격차 크지만, 통일 필요 인식도 높아
신자들 의견, 태도에 큰 영향 받아
이어 '가톨릭 사제가 바라보는 통일과 교회'를 주제로 하여 공동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강우창 교수(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정수용 신부(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손서정 강사(가톨릭대), 조용신 연구위원(평화나눔연구소)은 민족 화해와 평화에 대한 종교의 역할과 관련해 '교회와 일반 신자들을 잇는 가교로서 성직자의 역할'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성직자가 바라보는 평화와 통일, 북한에 대한 인식, 정치와 종교 관계에 대한 태도”를 조사했다. 이를 위해 지난 9월 19일부터 10월 7일까지 군종교구를 제외한 15개 교구와 남자수도회 민족화해위원회를 통해 전국 성직자를 대상으로 설문했다. 설문에 응한 사제는 5713명 가운데 460명이었다. 연령대는 40대가 가장 많았고(148명), 정치 성향별로는 진보 335명, 중도 78명, 보수 47명이다.
통일 남북관계에 대한 설문에 응답한 사제들의 태도를 살펴보면,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일반 국민이 “그렇다”고 대답한 비율 43 퍼센트, 신자 48 퍼센트에 비해 81.5 퍼센트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또 북한이 협력 대상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사제 비율은 89.3 퍼센트이고 일반 국민은 56.3 퍼센트였다.
북한에 대해 가톨릭 신자들이 우호적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질문에 일반 국민의 긍정 답변은 53.9 퍼센트, 천주교 신자는 67.5 퍼센트였지만, 사제는 39.8 퍼센트였다. 천주교 내 북한에 대한 인식을 비신자와 일반신자들이 긍정적이라고 보는 반면, 사제들은 다르게 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천주교 신자들이 북한에 긍정적 태도를 갖는다는 평가는 평화와 화해를 강조하는 교회의 가르침과 이를 내면화하지 못하는 자신의 태도 사이 인지 부조화를 가리킨다”고 분석했다. 자신은 북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지만, 다른 신자들은 그렇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내적 갈등을 완화한다는 것이다.
사제들에 대해서는 “기대-불일치 이론”을 적용했다. 사제들은 북한과 협력하는 것에 대해 평화와 화해를 중시하는 신앙적 기대를 품고서, 일반 신자들에게도 이를 기대하지만, 실제 접하는 현실은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신자 공동체 안에서 보수적 목소리가 과다 대표되고, 사제들 역시 이런 입장에 위축됐다고 볼 수 있다.
교회와 성당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사제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 가톨릭교회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에 대해 사제는 56.1 퍼센트가 긍정했고, 16.5 퍼센트가 부정했다. 연구팀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일선 성당들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동시에 본당(성당)과 특수사목 사이 차이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는 지점으로 평가했다. 사회 복음화 분야가 별도 조직으로 발전하면서, 전문화되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 반면, 상대적으로 교구민과 구체적으로 호흡해야 하는 본당에서는 관심과 고민 정도가 낮아지는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사제들이 한반도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 '매우 자주 언급한다'는 5.9 퍼센트, 가끔 언급한다는 56.5 퍼센트, 그다지 언급하지 않는다는 29.6 퍼센트,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가 8 퍼센트다.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교우들이 싫어하기 때문에”(공동체 분란 우려)라고 답한 비율이 45.7 퍼센트로 가장 높았다.
연구팀은 조사 참여자 수가 460명으로 낮다는 점, 교구별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전반 특성을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사제들이 통일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지만, 실제 남북관계의 미래에 대한 응답에서는 다른 집단과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사제들 사이에서도 구체적 통일의 모습이 논의되지 않는 것은 일반 국민들 수준과 비슷하다”.
앞서 ‘가톨릭 언론을 통해 본 교회 인식’에 대해 토론한 맹형균 기자(<가톨릭평화신문>)는 “교회가 조용하면 교회 언론도 조용해진다. 정치 상황이라는 변수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 모습”이라고 교회 언론의 수동적 태도를 아쉬워하면서, “교회가 더 적극적 언론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맹 기자는 “신중하려는 교회의 모습도 이해되지만, 반응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교회가 정의, 평화, 생명과 같은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 참여와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그러한 문제에 신속하고 명확한 입장을 보일 때, 오히려 호감과 신뢰가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백강희 교수(한남대)는 “북한 문제를 우리 사회 내 주요 갈등 쟁점으로 본다면, 어떠한 점에서 우리 사회가 북한을 둘러싼 이해관계자 간 대립을 논의해야 하는지 우선 고민해야 한다”면서, “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현상과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가톨릭 언론은 단순히 정보 전달자를 넘어 ‘실천’ 방법을 적극 제시하고 논의하는 ‘공론장’을 제공해야 한다면서, “교회가 설정한 의제를 따라가기보다는 교회가 실천으로 나서야 할 의제를 선제적으로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가톨릭 언론은 언론에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역할과 책임을 재점검해야 한다”면서, “교회가 북한을 둘러싼 사회 갈등을 풀어가는 데 필요한 의제를 적극 제시하는지, 갈등 관리, 해결 방법이 적절한지를 감시, 견제하며 교회의 역할과 사명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톨릭 언론은 교회와 교회 밖 언론 사이 가교 역할 역시 수행해야 한다면서, “통일에 대한 낮은 선호도와 부정적 대북 이미지는 북한에 대한 언론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무책임하고 선정적인 보도, 해외 언론에 대한 과도한 의존 등 반복적인 국내 언론의 관행을 개선하는 데에, 가톨릭 언론의 책임과 역할의 중요성은 낮지 않다”고 강조했다.
'가톨릭 사제가 바라보는 통일과 교회' 발표에 대해 토론한 김학배 신부(춘천교구)는 설문 조사 결과에서 드러나는 현상 가운데 “통일과 남북관계 개선을 교회 내에서 말하지 못하는 어려움”에 대해서, “평화 담론을 말하는 사제들이 보수적 신자들에게 심한 비판에 노출되는 사례들이 생기고, 이것이 큰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교회 내 평화 담론의 목소리가 중단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또 남북 문제, 평화, 통일에 대한 관심과 담론이 줄어드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본당별로 주어지는 화두들이 너무 많아서라고 덧붙였다.
김 신부는 “사제들이 사제다움을 잃어버린 모습으로 평신도들의 신뢰를 잃었고, 세상의 신뢰도 잃었다. 잃어버린 신뢰는 복음 가치, 평화 가치, 통일 필요에 대한 담론조차 허공에 흩어지는 소리로 만들었다”면서, “사제들의 평화에 대한 외침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제 자신부터 복음 가치를 지키고 평화 가치를 지켜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
**** 옮긴이 주: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이고 의미가 명확하도록 일부 문장들을 재배열하는 동시에 '번역투'의 생경한 일부 구절들을 다듬었다.
(* 수식어가 길게 딸린 문장들을 되도록 짧게 하여 주어부와 술어부의 연결성을 높였다. 오타가 분명해 보이는 낱말은 바로잡았다. 예: 피해자 -> 가해자)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주요 용어들과 내용은 정현진 기자의 원문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