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박정남 (교보문고 MD) | webmaster@sisain.co.kr
(출처-2014년 8월2일 <시사인> 359호, 73면 )
여름휴가에도 바지런히 회사와 조직의 미래를 모색해야 하는 리더용 책이나 특별한 목적이 있는 책을 찾는 게 아니라면 이번 휴가 때는 좀 진지한 만화를 읽어보는 건 어떨까. 적대와 복수의 땅, 하늘만 열린 거대한 감옥,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둘러싼 이야기를.
ⓒAP Photo
만화책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쥐>의 작가 아트 슈피겔만(사진)의 부모는 아우슈비츠 생존자다. 작가는 “유대인이 한 종족인 건 맞지만 인간은 아니다”라는 히틀러의 망언으로 책을 열고, 아버지가 겪은 참상과 아우슈비츠 이후의 분열된 삶을 쥐(유대인)와 고양이(나치)의 모습으로 담담히 기록한다. 아우슈비츠의 참상도 그렇지만 가장 씁쓸했던 건 인종주의의 희생자였던 아버지가, 며느리가 차에 흑인을 태운 것에 분노하고 흑인이 훔쳐간 물건은 없는지 확인하는 대목이다. “어떻게 아버님이 인종차별을 할 수 있느냐”라며 어이없어하는 며느리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검둥이와 유대인은 비교할 수도 없어!”
많은 이들이 의아해한다. “참혹한 홀로코스트를 겪은, 누구보다 고통에 예민한 이들이 왜 팔레스타인에는 그리 가혹한가?” 그 해답의 실마리가 저 문장에 있다. 민족주의와 결합한 종교,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가 되는 폭력의 순환구조,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돈과 정치권력. 그 고통과 망각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끈질기게 반복되면서.
<쥐>가 유대인들이 겪은 참혹한 역사의 기록이라면, 기 들릴의 <굿모닝 예루살렘>이나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은 그 유대인들이 시오니즘을 앞세워 이스라엘로 간 이후를 그린다. 두 책 모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잘 그렸는데,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읽으려면 ‘코믹(만화) 저널리즘’의 백미 <팔레스타인>을, 유머러스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굿모닝 예루살렘>을 고르면 되겠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지성 에드워드 사이드는 뉴욕에서 이스라엘인이 모는 택시를 탄다. 서로의 국적을 확인하고 침묵하던 택시 기사는 자기들이 다 나쁜 사람은 아니라며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물론이죠. 당신 같은 사람과 친구가 되면 참 좋겠네요’라고 답하고 후에 대담집 <펜과 칼>에서 마치 우주에서 같은 행성인끼리 만난 기분이었다고 술회한다. 맥주를 마시며 폭격을 ‘관람’하고 ‘테러리스트를 공급하는 팔레스타인의 모든 엄마는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스라엘군의 자제력에 노벨평화상을 줘야 한다’고 말하는 이스라엘인들 말고도 우주에서 같은 행성인으로 만날 좋은 이스라엘인이 많이 남아 있기를 빈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