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우리 시대의 빈 무덤 사건
조민아 교수, ‘기억의 지속과 확장을 위한 사회적 영성’ 발제
이미영 | editor@catholicnews.co.kr
(출처-2014년 7월 1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사회 안에서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 것처럼, 종교적으로도 이런 절망의 심연 속에서 “과연 신이 있는가?”라는 실존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고통과 혼란의 현장, 빈 무덤 사건을 떠올린 한 신학자의 발제가 지난 6월 30일 우리신학연구소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공동주관으로 서대문 한백교회에서 열렸다. 미국 세인트캐서린 대학 조민아 교수는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세월호 참사의 상처와 그것을 빨리 잊기를 강요하는 욕망 사이에서, 빈 무덤 사건처럼 세월호의 기억을 공동체의 기억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사회적 영성을 제안하였다.
“붙잡지 말라”, 대신에 기억하라, 소문을 퍼뜨리라
▲ 조민아 교수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빈 무덤을 두고 칼 바르트와 같은 신학자는 부활이 실제 일어났다고 알리는 ‘기호’(sign)라고 설명하지만, 조민아 교수는 스승의 무기력한 죽음을 목격한 이들의 공포와 그 시신이 갑자기 사라진 황망함으로 발생한 ‘단절’에 더 주목하였다. 예수께서 끌려가기 전에 분명히 “죽었다가 반드시 살아날 것”이라고 했지만, 제자들은 그들이 직접 보았던 것, 들었던 것을 쉽게 잊고 망각으로 도망쳤다. 더욱이 부활한 예수는 확신이 필요한 제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관심이 없고, 낯설고 알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제자들 곁에 출몰했다. 그러나 복음사가들이 공통으로 기록하려고 했던 것은 상처와 불안의 기억에서 벗어나 어서 빨리 망각으로 도망치고 싶어하던 제자들에게 “나에 관한 소문을 내 달라”는 예수의 요청이었다.
예수의 요청을 들은 이들은 스승에 대해 기억하기 시작했고, 그 기억은 이내 증언을 불러일으켰고, 증언은 소문이 되었다. 그리고 빈 무덤의 공백은 봇물처럼 넘쳐흐르는 기억과 증언과 소문으로 채워졌고, 그 기억이 마침내 진리를 대신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을 움직이게 하는 소문 혹은 유언비어의 힘이 지배세력들을 위협하는 거대한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일찍이 주목했다. 예수를 따르던 이들은 소문들을 통해 예수에 대한 기억을 재구성했고, 그 기억을 통해 자신들이 누구인가 묻기 시작했고, 예수의 적대자들이 두려워할 공동체로 발전하였다.
사회적 영성, 기억의 지속과 확장
조민아 교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에 대한 기억을 품고 산다는 것, 그 기억을 말로 꺼내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을 의미하며, 무엇보다도 “그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예수라는 진리가 무덤에서 사라져서 산산이 흩어져 사람들의 기억으로 파고들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몸을 입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찾는 진리는 해체되고 재구성되기를 반복하며, 그러한 불일치와 소란을 통해 공동체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제도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적 영성은 기억에 의존해 모인 수많은 이들을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기억을 꺼내놓도록 이끌 수 있고, 그렇게 작고 불명확하고 불안정한 기억들의 느슨한 연대를 꾸려낼 수 있을 것이다.
▲ 미국 세인트캐서린 대학 조민아 교수의 발표회가 지난 30일 서대문 한백교회에서 열렸다.
ⓒ이미영
“기억하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예수의 부탁은 안락한 회당이나 완벽한 법전이 아니라 사람들을 향하고 있다. 망각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서로서로 기억을 지탱해 주는 사람들, 기억에서 의미를 찾고 변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을 보아야 한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끔찍한 불행의 희생자가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보게 하는 세상으로 열어 준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조민아 교수는 덧붙였다.
조민아 교수는 이번 발제가 단지 세월호 참사에 국한되는 것을 경계하며, 용산이나 쌍용자동차, 밀양, 강정마을 등 우리 주위의 모든 비극에 저항하는 ‘사회적 영성’을 고민하였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인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진상규명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가 모두 세월호의 희생자인 것처럼 고통스럽고 참담함을 느끼는 그 의미를 서로 함께 나누면서 기억의 지속과 확장 속에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적 영성이 더 고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가 지닌 감정과 기억을 나누면서 그 의미를 기억하고 연대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지금 우리 시대의 종교의 역할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번 발표회에 참가한 청중들 역시, 세월호와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왔다는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아우슈비츠 이후의 신학처럼, 세월호 참사 이후의 신학과 신앙 공동체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기대와 의견을 나누었다. 이번 발표회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 우리가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인지, 그리고 각자의 그 경험을 어떻게 엮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숙제를 안고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