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일독을 권함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출처 - 2014년 6월 16일 <한겨레>)
나카쓰카 아키라(85) 일본 나라여대 명예교수
시바 료타로의 역사관
나카쓰카 아키라 지음, 박현옥 옮김
모시는사람들·1만2000원
현대 일본의 역사인식
나카쓰카 아키라 지음, 박맹수 옮김
모시는사람들·1만5000원
일제의 식민지배도 남북 분단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대한민국 총리 후보자라는 사람의 역사관과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의 이른바 ‘시바 사관’은 외관도 닮은 꼴이지만 그 뿌리도 같다. 이른바 식민사관으로 통칭되는 그 역사관은 실은 문창극 총리 후보자만의 유난스런 사관이 아니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신봉하는 이땅의 뉴라이트들 일부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신화의 단계를 지나 마침내 신격화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박정희가 저서 <국가와 민족과 나> 등에서 한 말도 조선 500년 역사를 “허송 세월”이라 한 문창극과 시바가 한 얘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 “우리 반만년 역사는 한마디로 퇴영과 조잡함과 침체의 연쇄사였다.” “한국사회는 게으름, 무사안일, 기회주의에서 보이는 소아병적인 봉건사회의 축소판에 지나지 않는다.” “사색당쟁, 사대주의, 양반들의 무사안일주의적 생활태도 때문에 후세의 자손들까지 악영향을 끼친 민족적 범죄사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은 바로 조선사의 유산이다.” “우리가 민족중흥을 이룩하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일제의 조선병탄 정당화한
‘시바 사관’의 허구성 통타
이런 역사인식이 바로 5·16쿠데타와 그의 장기 독재체제를 정당화한 이데올로기의 토대였다. 일제는 그와 꼭같은 논리를 앞세운 조선 침탈로 일본 근대화의 물적 토대를 쌓은 메이지 유신 이래의 제국주의적 야만을 정당화했다. 말하자면 날조된 식민사관을 동원한 외부세력이 일제였다면 그것을 내부에서 활용한 세력이 5·16쿠데타 이후 권력을 확대재생산해온 친일우파였다.
일제 식민사관의 요체는, 조선 500년은 자체적으로는 아무것도 해낼 능력도 없는 정체와 타율의 역사였으며, 이 무기력하고 부패한 봉건 조선을 그대로 두면 러시아나 중국 등 주변 대국들이 장악해 장차 이를 토대로 일본마저 삼키려 해 천하가 위태로와질 것이므로 일본, 즉 외부세력이 개입해 만악의 화근인 조선을 ‘병합’할 수밖에 없다, 일본과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지무라 히데키, 강재언, 강덕상, 미야지마 히로시 등과 함께 ‘조선사 연구회’를 꾸려 이런 식민사관의 허구와 날조를 새로운 사료들을 발굴해 까발리며 정면으로 비판해 온 나카쓰카 아키라(85) 나라여대 명예교수의 <시바 료타로의 역사관>(2009) <현대일본의 역사인식>(2007)을 보면 문창극 발언이나 박정희의 역사인식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한눈에 명료하게 들어온다. 이 책들은 일본의 경복궁 점령과 동학농민혁명 개입 및 무자비한 살륙, 그리고 청일전쟁이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일본 수뇌부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시나리오에 따라 감행된 만행임을 새로운 사료를 통해 고발한 <역사의 위조를 밝힌다>(1997, 한글판은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 등으로도 알려진 나카쓰카 교수가 2012년 전남 도립도서관에 기증한 그의 저서 및 소장본 1만 2500권 중에 들어 있다.
동학농민혁명 120돌에 맞춰 번역돼 나온 두 책 중에서 <시바 료타로의 역사관>은 지금도 일본 서점들이 그의 책 코너를 따로 만들어 둘 정도로 잘 팔리는 ‘국민작가’요 한국에서도 상당한 독자층을 갖고 있는 시바의 잘못된 한국사 인식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시바 사관’ 비판서다. 한국을 잘 알고 한국에 애정도 있고 지인들도 많다는 시바의 한국사관 오류의 핵심은 그가 대표하는 ‘메이지 영광’론에 집약돼 있다. 메이지 영광론은, 근대 초 일본은 밀려오는 서구열강위 위력 앞에 떨고 있던 ‘애처롭고 착한 소년’이었으나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구와 어깨를 겨루는 모범적인 문명국이 됐다, 국제법까지 잘 지킨 이 우등생은 그러나 러일전쟁 이후, 특히 1926년 쇼와(히로히토 천황)시대 이후 군부의 잘못된 야심으로 일탈하기 시작했고 1931년 만주침략 이후 태평양전쟁까지 걷잡을 수 없이 질주하다 패망했다, 메이지의 영광은 쇼와에 의해 배신당했다는 것이다.
수천만부가 팔려나갔고, <엔에이치케이>가 2009년 11월부터 3년간 13회에 걸쳐 역사 스페셜 드라마로도 방영했던 시바의 대표작 <언덕 위의 구름>은 바로 그 러일전쟁까지의 메이지 영광을 젊은 사관들을 주인공 삼아 그려낸 소설이다. 시바 사관 오류의 핵심은 메이지 영광 속에 은폐되고 날조·왜곡된 1875년 운요호의 강화도 침략부터 경복궁 점령, 동학농민 학살, 청일전쟁, 명성황후 살해, 의병 학살, 조선 강제합병과 약탈 및 착취, 3·1운동과 임시정부와 무장독립운동 등 한국인들의 일상과 피로 얼룩진 항일 역사에 대한 무지와 의도적 말살이다. 시바는 조선을 동정하는 듯하면서도 정체와 타율이라는 식민사관에 입각한 조선의 무능과 당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위치, 제국주의시대라는 숙명론 등을 토대로 일본의 조선병탄은 어쩔 수 없었다며 침략을 정당화한다.
오늘날 일본국민들 대다수가 메이지 이래 일본이 조선과 조선사람에게 자행한 범죄행각 사실 자체를 모르고, 일제의 전쟁범죄래야 15년 전쟁 즉 1931년 만주침략 이후 패전까지의 기간에 형성된 중국 및 미국과의 관계에서만 파악하지 한국과 한국인을 피해자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역사적 색맹이 된 데는 시바 사관도 한몫했다. <시바 료타로의 역사관>은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조목조목 반박한다.
일본은 러일전쟁 이후, 특히 만주침략 이후 패망까지 ‘15년 전쟁’ 동안 전쟁범죄국이 된 게 아니다. 일본은 조선 등 이웃 나라들에 대한 침략과 수탈로 근대화의 물적 토대를 쌓고 제국주의로 치달은 ‘메이지 유신’ 초장부터 길을 잘못 들었다. 동아시아를 전화로 뒤덮고 수천만 아시아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일제의 전쟁범죄는 메이지 유신이 그 시작이었다. 일본 지도층뿐만 아니라 다수 국민들이 <언덕 위의 구름>에 열광하는 시바 사관 추종자라는 것은 곧 일본인 다수가 여전히 일제의 만행을 만행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나카쓰카 교수는 그것이 무엇보다 일본 자신에게 불행한 일이라는 점을 계속 지적해 왔다. 메이지 영광론은 한국 우파들이 곧잘 입에 올리는 ‘국가개조’론의 원형이기도 하다. 그 최대의 피해자라고 해야 할 이땅의 우파들의 그런 인식은 그들이 입으로는 식민사관 거부와 극복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그 추종자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일본의 역사인식>은 시바 사관뿐만 아니라 니토베 이나조, 오카쿠라 덴신의 극우에서 <쇼와사>를 쓴 한도 가즈토시, 에구치 보쿠로 등의 중도, 좌파에 이르는 일본 지식인들의 잘못된 역사관과 메이지 영광론, 강화도 사건·동학농민 학살·청일전쟁 등의 주요 사건 해부를 통해 훨씬 더 폭넓고 체계적으로 식민사관을 비판하고 뒤집는다.
문창극 후보자나 그의 비판자들 모두가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