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 없으면 교육 개혁 없다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중동중학교 송영심 교사가 2학년2반 교실에서 학생들과 위진남북조 시대를 주제로 역할극을 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혁신교육감 시대를 위한 도올의 교육입국론 l ④ 교사론
인문학 르네상스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전남대학교 철학과에서는 1학년 정원 35명 중에서 6개의 자리를 특별히 대안학교 출신의 학생들에게 수능점수에 관계없이 배당한다고 한다. 처음에 3명만 받았다가 그들의 성적이 너무 우수하고 또 인간적으로 성숙되어 있어 6명으로 늘렸는데, 이들의 존재는 과의 면학 분위기를 놀랍게 향상시키고 있다고 한다. 자유로운 사색과 억압받지 않는 삶, 그리고 목전의 당면한 성취 스트레스에 오염되지 않은 여유로움을 지닌 어린 생령의 정신능력이 철학을 공부하는 데 훨씬 더 적합한 토양을 보유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입학 내규가 국립대학 과 교수들 자체의 합의에 의하여 성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혁명은 바로 이렇게 로칼하고도 자율적인 작은 불씨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중·고교의 현실태가 대학입시에 영향을 주는 좋은 사례로서 우리가 주목할 만하다. 성공회대학교에도 대안학교·혁신학교 출신들을 따로 배려하는 입학제도가 활성화되어 있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에서도 엄선된 대안학교·혁신학교 출신의 우수학생들을 대학과 협의하여 추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앞서 시민의 제1의 덕성을 자유 아닌 “코오퍼레이션”(cooperation)이라는 영어단어를 써서 말했는데, 그것을 “협동”이라 번역하지 않고 “협력”이라고 번역했다. 협동이라는 단어는 전체우선주의에 의하여 개체가 말살되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협력”이란 대등한 개체 간의 협조양식을 의미한다. 민주는 법질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자도 우리 인생이란 송사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 했고, 사회질서를 법으로 유지하게 되면 민중이 피하는 것만 배우고 염치를 상실한다고 했다(民免而無恥). 민주는 인간개체 내면의 덕성의 공통분모가 없이는 성립할 수가 없다.
여기 협력과 대극점에 있는 “자유”라는 말은 “freedom”의 번역술어이다. “自由”라는 단어는 선진문헌에는 나오지 않는다. “freedom”은 “free”라는 형용사의 명사형인데, “free”는 반드시 “from”이라는 전치사를 수반한다. 자유는 그 자체로 절대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으며 반드시 “……로부터의 자유”라는 맥락에서 의미를 갖는다. 절대적 자유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란 결국 억압으로부터 풀려날 때 느끼는 일시적인 느낌일 뿐이다. 이러한 일시적 느낌을 인생의 지고의 목표로 삼거나, 보편교육 즉 대중교육의 주제로 삼을 수는 없다.
인간은 자유에 탐닉하게 되면 반드시 자기파멸을 가져오게 되거나, 향유하던 자유를 헌납하게 된다. 이 자유의 헌납이 인간이 사악한 종교에 굴종하게 되는 이유다. 인류가 자유를 처음으로 흠뻑 누리게 된 20세기 벽두에 히틀러의 나치즘이나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창궐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는 일시적인 느낌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는가? 물론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 어떻게? 존재모드를 자유에서 “자율”로 전환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자율(自律)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자기에게 스스로 규율을 부과하는 것이다. 인간은 욕망의 주체이다. 욕망은 공생의 진리를 부정하는 강렬한 유혹성을 가지고 있다. 사적인 욕망에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해서 법정 스님께서 그토록 가르치시고 실천하신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 우리의 존재모드를 소유모드에서 무소유모드로 전환하는 것, 이 전환을 나는 “협력”(cooperation)이라고 부른 것이다.
칸트는 이 자율의 궁극적 원리를 나의 주관적 의지의 격률이 항상 동시에 모든 사람이 같이 지킬 수 있는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한다고 하는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에 두었다. 그리고 인간은 수단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목적의 왕국에서 같이 공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잘라 말하면, 우리가 추구하는 진보교육 즉 혁신교육이라는 것은 피교육자인 학생을 입시나 여타 사회적 경쟁가치를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지 않고, 그 자체의 인격을 목적의 왕국에 안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진보교육의 원리가 왕왕 서구적 시장중심주의적 자유주의와 혼효되고 있다는 것을 나의 공부이론과 협력이론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협력”이란 인간 존재의 소유모드를 근원적으로 단절시키는 “무아”(無我, anātman)의 철학적 배경이 없이는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다. 자유란 쉬운 것이나 자율이란 어려운 것이다. 자율이란 반드시 “교육”을 통하여 달성되는 “교양”이며 이 교양의 집합을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civilization”이라는 단어는 “civilized”(교양 있다)라는 단어와 상통하며, 시민(civitas)이라는 말과도 어원이 상통한다. 시민, 교양, 문명, 협력, 무아가 결국 동일한 가치관의 내재적 맥락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진보주의교육이 왕왕 자유주의로 오해된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적 가치를 지상의 테제로 삼는 성향이 있다. 개체지상주의는 결국 방종으로 귀결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존 듀이(John Dewey, 1859~1952: 미국 교육철학의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그의 리버랄리즘적 교육관의 계승자들이 시행한 교육방법론의 파탄은 미국의 공교육을 망쳐버리고 미국 사회를 근원적으로 해체시키는 데 공헌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듀이 철학이 역동적 과정을 중시하지만, 교육이 “과정 그 자체”에 대한 신화적 예찬에만 머물게 되면 아무런 목표설정이나 “휴먼빌딩”의 결실이 부재하게 된다. 한국의 학부모들이 초창기의 대안학교를 불안하게 바라보았던 제1의 이유였다. 어설프게 혁신교육을 외치는 자들이 흔히 말한다: 학생은 온전한 개체이므로 그 온전한 개체의 가능성이 스스로 발현되도록 돕는 것이 교사의 임무이다. 말인즉 매우 근사하게 들린다. 그러나 학생의 현실태는 온전한 개체가 아니다. 학생은 교육받기 위해서 학교에 오는 것이다. 목가적인 에밀(Émile)의 체험을 반복하려는 것은 아니다. 학생이 온전한 개체라는 것은 학생을 바라보는 시각설정의 이데아티푸스적 좌표일 수는 있으나 그것이 곧 학생의 현실태일 수는 없다.
맹자도 사람은 모두 요순이 될 수 있다 했고, 나는 성인과 동류(同類)라고 말했다. 그리고 왕양명의 제자들은 “길거리에 가득찬 것이 모두 성인이다”(滿街人都是聖人)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19세기 조선의 유자 최한기(崔漢綺, 1804~1877)의 말대로, 인간의 가능성을 말한 것이지 현실태의 승인은 아니다. 인간은 교육되어야 한다. 혁신학교의 자발성은 교육적 계기의 효율적 방법론을 말한 것이지 자발성 그 자체에 절대적 가치를 두자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무아적 자기규율의 난제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협력하는 인간”(homo cooperativus)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수행자가 바로 “교사”이다. 모든 낭만주의 교육, 열린 교육, 자유 교육의 낭패는 바로 교사와 학생을 완벽하게 평등한 개체로 설정하는 천진스러운 낙관주의에 있다. 나의 “공부론”은 이러한 낙관론을 거부한다. 모든 성공적인 대안학교·혁신학교는 자율적 규율성을 강조한다.
프랑스가 인류의 인문주의세계에 자랑하는, 세계지성계를 선도한 위대한 사상가들을 배출한 걸출한 교육기관으로서 에꼴 노르말 쉬페리외르(École normale supérieure)라는 것이 있다. 앙리 베르그송, 에밀 뒤르껭, 사르트르, 보봐르, 메를로 퐁티, 알튀세르,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알랭 바디우 …… 이 셀 수 없는 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이 한 교육기관에서 쏟아져 나왔다. 참으로 경이롭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프랑스 교육부 산하의 교육기관이 고등학교 교사를 배출하기 위한 “사범학교”로서 출발한 기관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프랑스에서는 중·고등학교 교사도 “프로페쇠르”(professeur)라고 부른다. 에꼴 노르말을 거친 사람들이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다가 논문을 써서 대학으로 가기도 하고, 또 대학에서 가르치던 사람이 고등학교 교사를 택하여 전근가기도 한다. 교사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다른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나는 우리나라의 사범대학제도와 교사임용고시제도를 전면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대학에 문리과 대학의 국문과, 물리학과와 사범대학의 국문과, 물리학과가 2원적 구조로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 대학에서는 무전제의 순수학문을 전공하고, 교사의 임용은 대학원 레벨의 고등교육기관의 심오한 훈도를 받은 자들에게 자동적으로 허락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서울대학교를 대학원 수준의 에꼴 노르말로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 미래비전의 중요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새 질서는 당장 실천하기 어려운 과제상황이므로 주어진 현실 속에서 어떻게 교육개선을 이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교육의 주체는 교사이지 학생이 아니다. 학생은 피교육자이며, 입학하여 졸업하는 과객(過客)이다. 객(客)에 대하여 주(主)의 자리는 선생이 지키는 것이다. 학교의 주체도 교사이지 교장·교감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교육개혁의 주체도 결국 교사이다. 교사는 교육의 알파이며 오메가이다. 교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없이는 우리는 교육개혁을 실현할 수 없다. 교육개혁이란 결국 교사가 학생들의 교육 그 자체에 헌신할 수 있는 존귀함의 입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학교를 학부형이 좌지우지하고 교사는 그 하수인인 꼴, 교장·교감은 교육청의 명령을 일방적으로 하달하며 교사를 닦달하고 있는 꼴, 이것은 도무지 한참 잘못된 판국이다. <여씨춘추> 「존사」(尊師)편에는 중국의 모든 고래 성인이 스승을 존귀하게 섬기지 않은 자가 없었다(未有不尊師者也)고 말한다. 스승을 존귀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큰 인물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나는 교사의 존엄성과 학교의 면학분위기를 제고시키기 위한 현실적 개선방향으로서 다음의 다섯 가지 테제를 제시한다. 첫째, 교사는 교육의 커리큘럼을 조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가 주체적으로 시험문제를 내고 자기가 채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개성있는 교육이 가능해지는 첩경이다. 수학자·물리학자로서 20세기의 가장 완정한 형이상학적 우주론을 수립한 화이트헤드(A. N. Whitehead, 1861~1947)는 교사가 자기가 가르치는 과목의 교과과정을 자신의 주체적 판단에 따라 상황적으로 조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인문·과학교육의 기본여건에 미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현재 입시교육의 전체주의적 엄격성 때문에 그러한 권한을 교사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둘째, 교사에게는 체벌의 권한이 있어야 한다. 교사가 체벌을 할 수 있다 없다 하는 문제가 법규적으로 논의된다는 것 자체가 비교육적인 것이다. 요즈음처럼 민주화된 사회에서 교사가 체벌을 할 수 있다 할지라도 과연 체벌의 어려움을 감내할 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 공부는 몸의 공부이며 교육은 몸의 교육이다. 말의 한계를 느낄 때 각성의 계기로서 체벌을 사용하는 것은 유용한 방편이 될 수 있다. 단지 체벌은 “때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감정의 표출이 아니며 객관화된 제식(objectified ritual)이라는 것, 그리고 신체적 상해를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체벌에 관해서는 학생들과의 자율적 약속의 전제가 있으면 그만이며, 시나 고전 구절을 외우게 한다든가 운동장을 몇 바퀴 뛰게 한다든가 하는 다양한 방법이 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학부형이 학교에 항의하는 일체의 행위를 학부형 스스로 부끄럽게 느끼는 전반적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학생의 본질적 인권이 훼손당하는 중대사 이외로, 점수나 학교행정상의 사소한 문제에 학부형이 개입하는 행위는 차단되어야 마땅하다.
넷째, 교감·교장의 평가기준이 교사들의 창의적인 교육적 가치에 대한 기여도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현금의 교육개혁은 혁신학교 운운하기 전에 이미 교장 한 사람만이라도 위대한 인격체로서 교사들을 보호하고 학생들의 교육에 헌신하는 모범을 보인다면, 학교분위기의 많은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 장학사가 되기 위하여 일제식 관변주의사고의 악순환을 영속시키고 있는 교장의 행태는 정죄되어야 한다.
다섯째, 교육청 자체 내의 수많은 비리가 깨끗이 척결되어야 한다. 나와 대학동기인 이재정 교육감에게 나는 이런 말을 건넸다.
“여보게, 혁신학교에서는 교장을 공모한다는데 내가 한번 응모해보면 어떨까?”
한참 생각해보더니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자격여건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당신은 나이가 많아 실격일 것 같구만.”
그래서 내가 말했다.
“그럼 한 3개월 공석을 메우는 기간제 교사를 신청해보면 어떨까?”
“그건 될 수 있겠는데. 암 되구말구!”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중·고교 교육현장에서 내가 한 말들을 차분하게 검증하고, 새롭게 “교육함”을 배워가는 체험을 해보고 싶다. 교사의 덕성은 <예기> 「학기」(學記)에 나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이 한마디! 「학기」는 말한다: “아름다운 요리가 앞에 있어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길이 없고, 지극한 도리가 앞에 있어도 배워보지 않으면 그 위대함을 알 길이 없다. 그러므로 배우고 난 연후에나 비로소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가르쳐 보고 난 연후에나 비로소 교육의 곤요로움을 깨닫는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연후에 사람은 진정으로 자기를 반성할 수 있고, 교육의 어려움을 깨달은 연후에 교육자는 자신의 실력을 보강하게 된다. 그러므로 말하노라!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는 서로를 키운다!”
김용옥 철학자 (출처- 2014년 6월 20일 <한겨레>)
혁신은 해체가 아닌 형성이다
교육의 방법은 학생들의 수용성과 지적 수준, 과목 성격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사진은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있는 혁신학교인 보평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난해 5월 자신들이 선택한 미술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혁신교육감 시대를 위한 도올의 교육입국론 l ⑤ 회고와 전망
내 글을 진지하게 읽는 사람들은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이 한마디가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의미맥락으로부터 충격에 가까운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요리가 앞에 있어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길이 없다”(雖有嘉肴, 弗食不知其旨)라는 것은 교육에 있어서의 모든 실천주의, 과정론적 참여주의, 그리고 요즈음 말하는 체험학습의 의미를 압축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주체성과 그 존엄을 말하면서도, 교사라는 주체가 일방적인 주체가 아니며 반드시 학생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쌍방적·상감적(相感的)·융합적 주체라는 것, 다시 말해서 선생과 학생은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관계망 속에서 끊임없이 교감하는 생성태라는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말한다: “나는 분발치 아니 하는 학생을 계도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나는 의심이 축적되어 고민하는 학생이 아니면 촉발시켜 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한 꼭지를 들어 말해주어 세 꼭지로써 반추할 줄 모르면 더 반복치 않고 기다릴 뿐.”(不憤不啓, 不悱不發, 舉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이것은 공자 교학방법의 전모를 말해주는 명언인데,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계발”(啓發)이라는 말이 바로 이 공자의 말씀에서 유래된 것이다. 공자는 주입식의 교육을 강요한 적이 없고 철저히 계발식의 교육을 주장했다. 공자는 학생의 자학능력(自學能力)과 독립사고, 그리고 학생의 주동성(主動性)적 깨달음의 과정을 강조했다. 그 과정의 초기 단계가 “계”(啓)이고 진전된 단계가 “발”(發)이다. “거일반삼”(擧一反三)이라고 하는 것은 학생이 주동적으로 깨달음의 영역을 확대해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교육이란 사문화된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촉발의 계기를 확대해나가는 것이다.
공자는 말한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지 않으면 맹목적이 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움은 반드시 배우는 자의 반추적 사유를 동반해야 하며, 또 그러한 자기체험적 사색을 통해 배움의 계기 그 자체를 확대해나가야 한다. “학”(學, Learning)과 “사”(思, Reflection)는 변증법적 발전 관계에 있다. 교학상장이나 학과 사의 변증법은 공자 본인의 삶의 자세였다. 공자는 자기 인생을 총평하는 자리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묵묵히 사물을 인식하고, 끊임없이 배우며 싫증내지 아니 하고, 사람을 가르치는 데 게을리하지 아니 하노라. 이것 외로 내 인생에 또 무엇이 있으리오!”(默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
공자의 교수방법을 나타내는 명언이 하나 있다: “세상 사람들이 나보고 박식하다고들 말하는데, 과연 내가 뭘 좀 아는가? 나는 말이야, 아는 것이 별로 없어! 단지 비천한 아이라도 나에게 질문을 하면, 비록 그것이 골 빈 듯한 멍청한 질문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 양단(兩端)의 논리를 다 꺼내어 그가 납득할 수 있도록, 있는 성의를 다해 자세히 말해준다. 이래서 내가 좀 아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吾有知乎哉?無知也。有鄙夫問於我,空空如也,我叩其兩端而竭焉。)
공자의 위대함은 주입식 교육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학생이 아무리 멍청한 질문을 해도 그 질문의 긍정적·부정적 양극단의 가능성의 모든 스펙트럼을 드러내어 질문자 스스로 그것을 깨닫도록 만드는 “계발”이 그의 교육방법이었다. 21세기 혁신교육의 모든 가능성은 이미 공자에 구현되어 있었다. 공자는 개방적이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계급적 차별의식이 없었다: “난 말이야, 누구든 육포 한 다발이라도 가지고 와서 예를 갖추면, 가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었거든.”(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공자는 말한다: “가르치는데 류(類)적 차별은 있을 수 없다.”(有敎無類) 이 “유교무류”라는 유명한 명제는 “오직 가르침만 있고, 류적 차별은 있을 수 없다”라고 번역될 수도 있다. 공자는 교육에 인간 차등을 두지 않았다. 보편교육의 실천자였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논의가 주입식 교육을 저주하고 토론식 교육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주입”은 교육의 주요 방법이다. 주입하고자 하는 내용이 식민지교육·군사독재교육에 의하여 터무니없이 왜곡되었다고 하는 커리큘럼 비리에 대한 비판과, 주입이라고 하는 교육방법론의 가치를 혼효하는 오류는 허용될 수 없다. 주입의 효율적 방법으로 학생들의 자발적 흥미를 유발시키는 선생님은 초특급의 교사요, 위대한 교육자라고 말할 수 있다. 토론도 위대한 교사의 인도가 없으면 공허해진다. 교사의 능력 부족을 토론으로 위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공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일찍이 종일토록 밥을 먹지도 않고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생각에만 골몰하여도 보았으나 별 유익함이 없었다. 역시 배우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 공허한 토론, 공허한 사색은 말짱 황이라는 얘기다. 서구의 유수 대학의 대부분의 위대한 강의는 주입식이다. 학생들이 쓸데없는 질문만 남발하는 혼란스러운 강의는 저급한 강의로 폄하된다.
교사의 자질을 결정하는 두 가지 위대한 덕성이 있다. 그 첫째는 학생들에 대한 따사로운 인간적 사랑이다. 학생들을 인격적 개체로 존중하고 그들의 마음상태에 이입(empathy)하는 정서적 폭을 갖춘 인격이다. 둘째는 자기가 소유한 지식과 자기가 신념으로 생각하는 정당한 가치를 가급적인 한 효율적으로 학생에게 분유시키고자 하는 지적 열정(intellectual ardor)이다. 주입은 그 위대한 방편이요, 토론은 주입의 평화롭고 효율적인 방법론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과목의 성격과 교실의 분위기, 학생들의 수용성과 지적 수준에 따라 상황적으로 결정될 뿐이다. 교육은 하나의 이념적 방법론에 치우칠 수 없다. 인간은 복합적이다. 교사는 프로파간디스트(propagandist)가 아니다.
교사는 본래 개인이었다. 국가나 제도의 속박이 없었다. 소크라테스도 혼자 걸어다니며 아테네의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공자도 혼자서 교육의 텍스트를 만들어서 인류사상 최초로 사(士)라는 계급을 창출시켰다. 따라서 교사는 개인의 소신을 전하는 사람이지 국가의 이념을 선포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도산서원은 이퇴계 개인의 소신을 전하는 곳이었다. 교사가 국가제도에 복속되고 프로파간디스트로 전락하게 된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모두 20세기의 민족국가(nation state)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역사적으로 교육은 종교와 지배계급과 국가의 전횡의 도구였다. 이 전횡에 맞서 최소한의 인간의 도리, 즉 후마니타스(hūmānitās)를 가르친 문명의 전사들이 교사였다. 모든 교사는 혁명가여야 한다. 국민의 의견이 획일주의적으로 통일되면 국가가 강해진다는 생각은 모든 우파적 성향의 꼴통들이 지니는 독단이다. 의견의 제일성(齊一性)은 국가 멸망의 첩경이다. 자유로운 토론과 다양한 견해의 수용, 개방적 정책의 운용만이 국가가 사는 길이라는 것을 인류의 역사는 예시해왔다. 생각의 제일성을 위하여 증오의 복음을 가르치는 종교나 국가나 개인은 필망한다.
공자가 그의 철학의 핵심을 “인”(仁)이라는 한마디로 압축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제자들을 평가할 때도 그 인격체가 가진 덕성의 장점을 허여하면서도, “그가 인(仁)합니까?” 하고 물으면 항상 “인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인”은 그의 세계관의 궁극범주(ultimate category)였다. 그런데도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仁)이 멀리 있다고? 내가 원하면 당장 여기로 달려오는 것이 인(仁)인데!”(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인(仁)에 당하여서는 선생에게도 양보하지 말라!”(當仁, 不讓於師) 선생과 학생의 관계에 있어서 공자가 얼마나 비권위주의적이었나 하는 것을 잘 말해준다. 바로 여기로, 바로 삶의 현장 한가운데로 달려오는 인(仁)이란 과연 무엇인가?
인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철학적 담론이 있으나, 나는 의사로서 다음과 같은 간결한 해석을 제시한다. “인”의 반대는 “불인”(不仁)이다. 그런데 “불인”은 신체의 마비현상을 의미한다. 느낌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은 행인(살구씨), 도인(복숭아씨), 의이인, 마자인, 욱리인과 같이 “씨”(seed)를 의미한다. 씨는 전 우주를 느끼는 생명이다. “씨”는 “느낌”(Feeling)이다. 이것은 서양 언어에서 감성을 뜻하는 “aesthetic”(aesthetics, 미학)이라는 단어의 부정태인 “anesthesia”가 “마취” “무감각”을 의미하는 것과 정확하게 상통한다.
“인”이란 결국 심미적 감성이 충분히 발현된 상태를 의미한다. 교육은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며, 문화는 아름다움과 인간적 정감에 대한 수용성(receptiveness)을 의미한다. 백과사전적 정보의 축적만으로는 교양있는 인간이 되지 않는다. 요즈음처럼 정보가 난무하는 시절에 드라이한 백과사전적 지식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교육의 목표는 인(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인(仁)이 곧 인(人)이다.
나에게 있어서 교육자의 심상은 나의 엄마가 내 가슴에 그려놓은 것이다. 나의 모친은 무한한 호기심과 섬세한 미감의 소유자였다. 나의 엄마가 평생 어김없이 새벽기도를 다니신 이야기는 옛 천안 잿배기 가도에 칸트의 산보처럼 전해져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는 새벽기도를 가지 않았다. 왜? 엄마는 나팔꽃처럼 아침에 피어나는 꽃의 동태를 전부 관찰하고픈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꽃이 피어나는 그 모습을 두 눈으로 관찰하고 싶었던 것이다. 벼르고 벼르다가 엄마는 교회를 가지 않고 우리집 화단을 지킨 것이다. 어슴푸레 먼동이 트는 추이와 함께 3시간 동안 꼬박 꽃망울을 응시한 것이다. 내가 잠에서 눈을 떴을 때, “난 보았다!” 그 한마디 속에 성취된 엄마의 감성과 해탈인에 가까운 그 환한 얼굴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대학교 때 나는 풍세면을 지나 깊은 고을 광덕면에 자리잡고 있는 폐찰에 가까운 광덕사에서 중노릇을 한 적이 있다. 공부한다고 들어갔다가 아예 머리 깎고 스님옷을 입고 염불을 외웠다. 몇 달을 지내고 집에 오는데 나는 삿갓을 쓰고 스님 복장을 입은 채 갔다. 나는 상당히 두려웠다. 평생을 기독교에 헌신하신 어머니가 갑자기 변모한 나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놀라실까?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대문을 밀치고 들어가는 순간, 엄마가 화단에서 꽃을 가꾸고 계셨는데, 순간 뒤돌아보시는 엄마의 낯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예기치 않은 그 순간에도 단지 아들이 돌아왔다는 반가움에 활짝 웃음 지으셨던 것이다. 내가 무슨 옷을 입었든지 간에, 그것은 인지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단지 “막내아들 용옥이”였을 뿐이다. 옷이 아닌 인간을 바라보셨다. 엄마는 내가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교회에 나가지 않았을 때에도 단 한 번도 그에 관해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용옥이가 자각이 들어 그리하는 것이니 그대로 두어라!”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날 교회에 나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잃어버린 양”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의 회초리와 더불어 <신약성경> <천자문> <격몽요결>을 암송했다. 엄마는 나에게 항상 말씀하셨다: “용옥아! 너는 너보다 더 부귀한 인간들로부터 상찬을 들으려 하지 마라. 항상 너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라. 영원히 이 땅의 젊은이들을 교육해야 한다.” 엄마는 영원히 이 민족의 미래만을 걱정하는 인간이었다. 과거의 사감에 사로잡힘이 없으셨다. 나는 생각한다. 학교는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엄마의 품이 되어야 한다고.
교육에 관한 한 우리 민족은 지구상의 어느 민족에도 뒤짐이 없는 완미한 전통을 지녀왔다. 교육에 관하여 외국의 모델을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전사를 길러내기 위하여 전체주의적 폭력을 조장한 플라톤의 교육론으로부터 출발한 서양의 교육사는 아직도 전체주의와 개인주의의 극심한 대립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교육 전통은, 물론 조선의 과거제도와 그와 구조적으로 결탁된 일본제국주의 식민지교육 그리고 군사독재정권의 국가주의에 의하여 왜곡되기는 했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함장하고 있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세계문명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교육은 고운 최치원(崔致遠, 857~908년 이후 사망)이 말한 화랑교육의 실상, 유·불·도의 다양한 이념을 배타 없이 수용하는 “풍류”(風流)라는 “현묘지도”(玄妙之道)로 복귀하는 영원한 테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람”은 “신성”(神聖: divinity)을 의미하며 “흐름”(流)은 실체적 정체성을 거부하는 역동적 균형이다. 인간의 현묘한 신성(神性)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역동적 조화를 지향하는 몸의 흐름을 말한다.
어두운 사형장으로 끌려갈 때 녹두장군 전봉준은 이와 같이 외쳤다: “나를 죽일진대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고가는 사람에게 내 피를 뿌려주는 것이 가할진대 어찌 컴컴한 적굴 속에서 암연(暗然)히 죽이는가!” 컴컴한 바닷속으로 스러져간 단원고의 학생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외치고 있다: “우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나 도올은 마지막 한마디만 교육 담당자들에게 간곡히 말하고 싶다: “혁신은 창조적 전진(creative advance)이다. 해체(deformation, deconstruction)가 아닌 형성(formation, construction)이다.” 김용옥 철학자 (출처- 2014년 6월 23일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