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두막 까페 2007년 8월 2일자에서 펌.
2. 글쓴이: 이승환 기자, 사진 임승수 기자(사진가)/전원생활
자립·평화 공동체 ‘평화원’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속리산 자락에 있는 ‘평화원’은 ‘생명 풀무꾼’ 원경선의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다. 평화원에서는 다른 신앙 공동체와 달리 노동과 경제적 자립을 철저히 지킨다. 굶주린 사람이 없으면 도둑이 없고, 도둑 없으면 재물 지킬 군대가 필요 없고, 군대가 없으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 세상의 평화가 오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대표적 기도문인 ‘주기도문’의 한 구절이다. 여기에는 종교를 떠나 인류를 구원할 구체적인 방법이 담겨 있다. 우리 가족, 이웃과 나라, 나아가 온 세계가 날마다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주어진다면 세계 평화는 자연스레 온다는 것이다. 누구 하나 굶주린 사람이 없으면 도둑이 없을 테고, 도둑이 없으면 재물을 지키기 위한 군대가 필요 없고, 사람 죽이는 군대가 없으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기농 기업 ‘풀무원’의 설립자이자 생명 풀무꾼인 원경선 원장의 평화관이다. ‘평화원’은 이러한 원경선 원장의 사상을 토대로 만들어진 기독교 공동체이다. 곧 ‘굶주림과 전쟁이 없는 인류 평화, 일용 양식의 나눔을 실천하는 방법은 농사이며, 살생·살인하지 않으려면 농약 치는 농사가 아니라 유기농업을 해야 한다’는 원경선의 평화론과 실천법을 산업적으로 발전시킨 곳이 기업체 ‘풀무원’이며, 그 정신을 삶에서 실천하는 곳이 ‘평화원’이라고 할 수 있다(편집자 주 : 원경선 선생에 대해서는 이번 호 104~109쪽 ‘무늬가 있는 삶’에서 자세히 볼 수 있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논밭으로 달려간다
평화원은 1953년 경기 부천에서 시작됐다. 원경선 원장이 당시 미군 부대 주위를 떠돌던 ‘하우스보이’들을 데리고 인간 풀무질을 시작한 것이다(당시의 이름은 ‘풀무원’이었다). 그때만 해도 개개인의 노력으로 먹을거리를 해결하고 바른 생활을 실천하는 데 뜻을 둔 초보적인 공동체였다. 이후 시간이 흐르고 공동체가 성숙하면서 평화원 식구들은 이웃에게도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1976년 양주로 터전을 옮기며 그 깨달음을 실천했다(이때의 공동체 이름은 ‘한삶회’였다). 평화원의 기본 정신인 자립·건강·나눔의 삶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2003년, 지금의 충북 괴산군 속리산 기슭으로 들어오며 ‘평화원’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공동체적 삶을 풀무질하고 있다.
현재 평화원의 식구는 원경선 원장 부부를 포함해 15명이며, 전체적인 살림은 정문수(36)·김명자(36) 목사 부부가 맡아서 보고 있다. 기독교 공동체이니만큼 모두가 개신교 신자지만, 비교인도 기본 정신만 지킨다면 참여가 가능하다(양주 시절에는 비교인도 있었다). 일상생활은 공동체의 특성을 고려해 지은 큰 흙벽돌 건물 두 동에서 이뤄진다. 한 동은 다양한 가구가 기거하기에 적당하도록 크고 작은 방 8개로 되어 있으며, 한 동은 예배당·강당·주방을 겸한 다목적 공간으로 쓰인다. 공동생활이 기본이기에 주거 외 취사·노동 등 대부분의 활동은 공동으로 이뤄진다. 공동체 내부에서는 개인 소유도 없다. 필요한 물품은 공동으로 구매하며, 매월 3만 원씩 용돈 격으로 개인 활동비가 지급된다.
평화원의 일과는 아침 6시에 기상해 새벽 예배 후 아침식사, 오전 노동 후 점심식사, 오후 노동 후 저녁식사, 자유 시간 후 10시 취침으로 짜여 있다. 외부에서 보기에 단조로워 보일 수 있으나 자급과 평화를 목적으로 하기에 모두들 공동체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가을걷이 후 농한기가 되면 그때부터는 외부 나들이, 친지 방문 등 개인적인 삶을 즐기며, 종교적 수련, 다른 구성원과의 이견 좁히기 등 개인적 성찰도 이때 이뤄진다. 평화원과 다른 신앙 공동체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노동과 경제적 자립을 철저히 지킨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이들(평화원에는 초등학생이 1명, 중학생이 2명 있음)을 빼고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논밭으로 달려간다.
‘일용할 양식’을 생산하기 위한 평화원의 경작지는 논 1000여 평, 밭 3000여 평으로, 쌀은 순수 자급용이고 감자·고구마·브로콜리·옥수수 등 밭작물은 자급 후 일부 판매도 한다. 농법은 당연히 유기농이다. 농장 위쪽의 고추밭·인삼밭에서 내려오는 농약 섞인 물을 피하기 위해 우물을 파 농업용수용 저수지를 따로 만들었을 정도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괴산으로 온 후 아직 자급자족을 못하고 있다는 것. 현재는 풀무원에서 나오는 원경선 원장의 수당(원 원장은 풀무원 고문임)까지 생활비로 들어가고 있는데, 재정적 자립은 물론 나눔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안정적 영농 기반 을 갖추는 게 급선무다.
솔직해지면 서로가 편하다
자립·건강·나눔의 삶을 충실히 따르겠다는 서약만 지키면 평화원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별다른 규정이나 제약은 없다. 새벽예배와 10시 취침도 신앙과 노동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이기에 되도록 권유하는 것일 뿐 강제 사항은 아니다. 굳이 금지 사항이 있다면 금주·금연 정도다. 술의 경우 축하 건배주나 농주는 상관없지만 술집에서 취하기 위해 먹는 술은 금한다. 몸 버리고 이웃에 나눠줄 돈을 낭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담배 역시 몸에 해로운 뿐 아니라 남의 밥그릇을 태워 연기로 날려버리는 것이기에 절대 금한다.
평화원의 식구가 되려면 먼저 원장의 면접을 거쳐야 하며, 한 달 생활 후의 1차 평가와 1년 후의 2차 평가를 거쳐 정식 식구가 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주거 공간과 경작지가 부족해 동참 의사를 밝힌 사람들이 있는데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는데, 올해 집을 한 채 더 짓고 인근에서 농사지을 땅을 빌려 구성원들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물론 평화원이 죽을 때까지 머무르는 평생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기 양주 시절에는 식구가 60~70명까지 됐는데, 그분들도 대부분 저마다의 터전을 찾아 뿌리를 내리고 일용할 양식의 삶을 살아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잘 배워 나가서 실천하라’는 건 원장님의 뜻이기도 하고요.” 원경선 원장을 보필하며 공동체의 살림을 챙기고 있는 정문수 목사는 “평화원은 하나의 훈련 공동체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얼마 전까지 기독교 봉사 공동체인 ‘다일공동체’의 김일곤 목사가 머물다 가기도 했다. 다른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평화원의 의사 결정 구조도 회의가 기본이다. 매일 아침 식사 후 작업 회의를 열며, 월요일에는 주간 작업 회의까지 겸한다. 의사 결정 시 다수결은 없다. 1년 넘게 살다 보면 서로의 의도와 생각들을 다 알기에, 선경험이나 선례, 효율성 등을 따져서 의견을 모아나간다(굳이 다수의 뜻을 묻는 경우가 있다면 저녁 식사 후 자유 시간에 텔레비전 채널을 결정하는 것 정도다). 견해차나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 때는 밤새워 얘기하는 ‘마음 나누기’를 실시한다. 마음 나누기는 솔직함을 바탕으로 하는데, 본인이나 상대방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다 보면 의외로 문제가 쉽게 풀린다고 한다.
반세기 넘게 평화원을 꾸려온 만큼, 원경선 원장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하지만 원 원장도 구성원들 위에 군림하지는 않는다. 그 역시 구성원 중의 한 명일 뿐이며, 요즘도 여전히 노구를 이끌고 밭을 찾는다. 다만 공동체 운영 방향에 따른 현안이 생겼을 경우에는 원장의 오랜 경륜과 판단력을 존중한다. 평화원은 민들레공동체·예수원·다일공동체 등 기독교 공동체와의 교류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지역 주민들과의 유대 관계도 돈독히 유지하고 있다. 평화원 농장에는 농약을 치지 않기에 다슬기와 메뚜기가 많아 찾아오는 주민들이 많다.
“원장님 사후에도 평화원의 역사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스콧 니어링·헬렌 니어링 부부가 살았던 집이 생태적 삶을 위한 배움터로 쓰이고 있듯, 여기 평화원도 원장님의 사상을 배우고 익히는, 모종을 키우는 모판이 되었으면 합니다.” “땀 흘려 일한 사람들이 먼저 먹어야지”
한낮 온도가 20도를 훌쩍 넘긴 봄날, 오전 내 감자밭에서 신나게 땀을 흘린 평화원 식구들이 식당에 모였다. 노동의 기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 계절부터 가을까지는 밥맛이 꿀맛일 것이다. 식당 조(평화원에서는 식사 준비와 설거지는 여성들이, 청소는 남성들이 조를 짜 돌아가면서 한다)가 배식대에 밥과 찬을 올려놓자 모두들 군침이 도는 듯 입맛을 다신다. “원장님, 앞쪽으로 오세요.” “아냐, 밭에서 땀 흘려 일한 사람들이 먼저 먹어야지, 어여 앞에 줄 서.” 고봉으로 푼 현미밥에 몇 가지 찬과 국을 챙겨 자리에 앉는 평화원 식구들.
현미밥은 원경선 원장이 최고로 꼽는 건강 비결이기에, 공동체 구성원들 모두 현미밥을 주식으로 하고 있다. 이런저런 얘기와 함께 식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때 좌중을 향해 목청을 돋우는 정 목사. “전도사님, 내일 비 온대요, 안 온대요?” “내일 밤부터 온대요. 지금 작업 중인 감자 심기는 내일 오후까지 마치면 될 거야.” “그럼 오늘 오후에는 조금 여유 있네. 우리 아이스크림 내기 족구 한 판 하고 일 나갑시다.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