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향2 주말섹션] 2007년 8월 2일치에서 펌.
2. 글쓴이는 백승찬 기자.
한국에서도 ‘해리 포터’의 인기는 높다. 한국판 출판사 문학수첩에 따르면 지금까지 한국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의 누적 판매량은 1000만부가 넘는다. 영화의 인기는 이를 능가한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425만명)에서 시작해 상영 중인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까지 누적 관객수는 1800만명에 가깝다.
영화평론가 김정대씨는 ‘해리 포터’ 시리즈가 가진 ‘웨인스코트’(현실세계와 병존하는 가상의 세계를 다룬 판타지물) 판타지의 전형성에 주목한다. ‘반지의 제왕’의 중간계는 신화적인 과거였고, ‘나니아 연대기’는 우리 세계와 완전히 다른 대체 우주를 그렸다. 그러나 ‘해리 포터’의 마법 세계는 현대 사회의 보이지 않는 틈에 자리해 있다. 방학을 맞은 해리 포터는 소설 속에서 ‘머글’(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보통 인간)이라 불리는 사촌 더즐리의 집에서 생활하고, 개학을 하면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떠난다. 최근 개봉한 다섯번째 영화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 더즐리는 요즘 청소년들이 입을 법한 농구 셔츠 차림이다. 김정대씨는 “현실과 마법 세계를 오가는 ‘해리 포터’의 구조가 대중의 정서와 잘 맞았고, 리얼리즘 극영화와 정통 판타지물의 교량 역할을 해냈다”고 설명했다.
‘해리 포터’가 청소년의 또래 문화에 동화될 요소를 간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화 및 문학평론가 강유정씨는 “10대 아이들이 해리 포터의 주문을 외워 자기들끼리 놀고 있는 광경을 본 일이 있다. 소설 속 주문이 마치 인터넷이나 또래 집단의 은어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해리 포터는 전지전능한 해결사가 아니다. 어려운 상황에 부딪혀 하나씩 수수께끼를 풀고 과정을 극복해나간다. 강유정씨는 이를 “유희적인 만화의 베이스와 비슷하다”고 지적한 뒤 “청소년기 학창 시절을 상상의 공간에서 펼쳐 보인다”고 분석했다.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서양보다 판타지의 기반이 약한 한국에서의 인기는 어떻게 분석해야 할까. 일각에선 한국의 ‘해리 포터’ 인기를 영어 교육 바람, 한국 공교육에 대한 실망 등과 연결해 얘기한다. 성은애 단국대 교수는 문화비평지 ‘플랫폼’ 최신호 기고에서 “‘해리 포터’를 읽는 것은 영어를 좀 읽을 줄 안다는 아이들 사이에서 하나의 유행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의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부모가 영어 텍스트를 고를 때,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해리 포터’만한 책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 관계자는 “최근 판매를 시작한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도들’ 원서의 경우 10, 20대는 물론 아이가 있는 30대도 많이 사가고 있다”고 전했다.
성교수는 아울러 “‘저런 학교(호그와트 마법학교)가 있으면 가고 싶다, 저런 정도의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사진과 수업 분위기가 부럽다’라는 생각을 품게 되는 순간, 이는 영국식 기숙학교에 대한 선망으로 이어진다”며 “이로써 영국 엘리트를 배출해온 학교제도는 전세계적으로 잘 팔리는 문화상품으로 포장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엇보다 ‘해리 포터’의 인기는 ‘이야기의 힘’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작가 조앤 롤링은 7권 마지막 장을 소설 시작과 함께 쓴 뒤 금고에 넣어두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7권의 시리즈에 이르는 이야기 구조가 그의 머릿속에 다 들어 있었다는 얘기다. 문학수첩 김시내 실장은 “1, 2편에 나오는 작은 에피소드에 대해 4편에서 설명하는 등, 한번 읽은 독자는 계속 빠져 들도록 복선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작은 마을마다 전해지는 ‘동네 전설’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소설 속에 끌어들이는 롤링의 재주도 대단하다.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신화, 전설, 민담을 잃어버리거나 방기한 한국에서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백승찬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