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정치혁명의 다음 단계
김지훈 책지성팀 기자
출처: 2018년 5월 27일 [한겨레]
지난 18~19일 열린 한국프랑스철학회 학술대회에 취재차 참석했다. 50돌을 맞는 68혁명의 역사적 의미와 여성해방운동의 태동, 라캉·데리다 같은 철학자들에게 68혁명이 준 영향 등을 살펴보는 다채로운 학회라 토요일을 낀 취재였지만 그리 힘들게 느껴지진 않았다.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발표들이었음에도 혁명을 주제로 해서 그런지 뭔가 불온함이 느껴지는 독특한 자리였다.
학회가 끝나고 학회 회장인 황수영 홍익대 교양학부 교수에게 총평을 물었다. 이번 학회에서 발제를 맡지 않아 68혁명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할 기회가 없던 황 교수는 총평과 함께 이런 말들을 덧붙였는데, 인상에 깊이 남았다.
“68혁명에서 중요한 점은 권위와 위선을 거부했다는 거예요. 특히 여성의 성은 그 사회의 위선의 정도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죠. 프랑스도 그때까지만 해도 ‘처녀들은 조신해야 한다'는 식의 성적 위선이 강한 사회였어요. 68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건 중의 하나가 기숙사 사건(프랑스 낭테르 대학에서 여학생 기숙사 출입 제한 철폐를 요구하며 벌인 시위)인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개입, 특히 성을 제한하려는 권위를 참지 못한 거죠. 이후에 새로운 관계를 실험하는 시도가 많아요. 여-여, 남-남, 여-여-남, 남-남-여 같은 관계들이 지속 가능한지 실험하는 거죠. 저도 프랑스에 오래 살았는데, 제가 만난 프랑스 사람들은 하나같이 위선을 철저히 배격했어요. 결혼한 배우자에게 자신이 지금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알리곤 ‘그래도 나랑 같이 살래 말래?’라고 묻는 식인 거죠.”
인터넷 카페 ‘강남·홍대 성별에 따른 차별수사 검경 규탄 시위’는 26일 오후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수사 규탄 집회’를 열었다. 사진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2016년 강남역 여혐 살인사건을 지나 미투 운동으로 이어진 에너지가 지금은 검경의 편파적인 몰래카메라 수사에 대한 분노로 분출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듯이 나 또한 지금 상황이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68혁명 또한 1789년 프랑스혁명과 1917년 러시아혁명같이 정치적 전복이나 체제의 전환을 이룬 ‘고전적인 혁명’은 아니었지만, “일상을 포함하는 사회 전 영역의 위계와 권위에 도전해 새로운 삶의 편재를 꿈꾼 혁명”(정대성 부산대 강사)이라는 점에서 혁명의 정의를 새롭게 내린 혁명이었다. 곳곳의 권력자들을 끌어내리고 공포에 떨게 하고, 일상적 대화의 규칙까지 바꿔놓은 미투 운동을 혁명이라 하지 않으면 무엇을 혁명이라 부르겠나.
지금 문제가 된 사건들은 표면적으론 여성의 안전권·생명권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성정치 투쟁은 분명 가부장주의적 남성중심사회를 뒤흔들어, 새로운 관계 맺기의 상상력이 현실이 되는 공간을 열어가고 있다. 비혼(<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성소수자 가족(<신가족의 탄생>), 새로운 며느리 관계 맺기(<며느라기> ),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아이 없는 완전한 삶>), 비독점 다자연애(<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 등 새로운 관계 맺기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읽히는 상황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혁명은 법을 지향해야 한다. 성정치적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여성들이 거리로 나오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을 언제까지 반복할 순 없다. 앞으로는 차별금지법 제정, 낙태권 확보, 시민연대계약 시행, 동성결혼 합법화 등 사람들이 어떤 형태의 관계를 맺을지 스스로 결정하고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 법 제도를 만들기 위한 투쟁이 좀 더 필요하다. 좀 더 많은 국회의원이 저 거리의 시위가 자신들의 일임을 알기 바란다.
탈코르셋과 자유의 쓰레기통
김영희 논설위원
출처: 2018년 6월 4일 [한겨레]
1968년 9월7일 열린 미스아메리카 대회 반대 시위는 미국 사회에 여성해방운동의 강력한 등장을 알린 장면으로 꼽힌다. 그 전해 창설된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그룹 ‘뉴욕의 급진여성들’의 주도로 대회가 열리는 애틀랜틱시티에 젊은 여성 400여명이 모였다. 몇몇이 대회장에 들어가 ‘여성해방’ 배너를 펼치고 ‘노 모어 미스아메리카’를 외치는 장면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이들이 ‘자유의 쓰레기통’이라고 적힌 통에 강요된 여성성의 상징이자 “여성 고문의 도구”라 주장하며 코르셋, 하이힐, 브래지어, 화장품, 잡지 <플레이보이> 등을 버리는 모습은 전세계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오랜 세월 ‘여성들이 브래지어를 불태웠다’는 이미지로 각인됐는데,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가 올해 초 한 잡지에 기고한 글 등을 보면 이는 오해다. 당시 <뉴욕 포스트>가 실제 시위 전 작성해놓은 기사에 베트남전 반대 시위자들이 징병카드를 불태우던 데 비유해 브래지어를 불태우는 여성들을 암시한 걸 다른 언론들이 받아쓰며 사실처럼 굳어졌다는 것이다.
시위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던 캐럴 하니시는 이후 “미스아메리카와 모든 아름다운 여성들을 결과적으로 우리와 같이 고통받는 자매들이 아니라 적으로 몬 것이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위가 여성의 권리와 해방에 대한 미국 사회의 대화와 토론에 불을 붙인 것은 분명하다. 2세대 페미니즘 확산의 모태가 된 여성들의 자율적인 ‘의식고취모임’은 70년대 중반 미국 전역에 1000여개로 불어났다. 이들은 강요된 여성성만이 아니라 인종차별 및 군산복합체와 군대의 미스 아메리카 이용, 기업들의 소비주의 또한 비판했다.
50년이 흘러 최근 한국 사회에 ‘코르셋’이란 단어가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소환됐다. 에스엔에스와 여초커뮤니티에 #탈코르셋 인증이라며 쇼트커트를 하거나 화장품을 부순 사진 등이 오르고 있다. 반면 이를 강요하는 데 반발해 ‘역코르셋’이란 말도 나온다. 개개인을 판단하는 획일적 기준이 아니라, 과도한 꾸밈노동과 상업주의에 대한 토론과 인식 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